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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만송이 장미

날짜. 2021.10.31

작가. 안옵가만안둬 (@ANAOBI_IS_REAL)

분야. 소설

00:00 / 05:23

돌아갈 곳을 둔 자는 표가 난다. 오비완은 평생을 한곳에서 살았지만 이곳은 그가 돌아갈 곳이 아니었다. 그의 부모가, 또 그 부모가, 부모의 부모가…토박이나 다름없이 살았으나 이곳은 오비완의 고향이 아니다. 어디에도 단단히 속한 느낌을 못 받고, 오비완은 평생을 타향살이하듯 살았다. 고향을 알지 못한 채로 말이다. ‘지금은, 고향이라도 알았으니 좀 나은가.’ 갖가지 빛으로 피로해진 눈이 뻐근하다. 눈두덩이를 문지르며 창문에서 떨어져 안쪽으로 발을 옮겼다. 고층 빌딩의 창문에서 내려다본 야경은 아름답지만 그만큼 눈이 피곤하다. 야경을 보는 취미가 있는 것은 아니다. 휴식을 위해 본다면 차라리 하늘이나 바닷가를 보는 게 더 좋긴 하다. 그럼에도 이렇게 하염없이 보고 있는 건…하나의 장면으로 그나마 여러 가지를 채울 수 있기 때문이다. 허상 같은 것들이라 해도.

오비완은 집안 곳곳을 장식하고 있는 화초들과 그것마저 다 덮을 정도의 장미를 한 번씩 둘러보았다. 마지막으로 보는 것은 침대 옆 협탁 위에 놓여 있는 장미 한 송이다. 언제나 생기를 가득 머금고 있는 붉은 장미. 장미에 잡아먹힌 것 같은 다른 곳과는 다르게 침실에는 이 한 송이의 장미가 전부다. 오비완의 집은 다른 이들이 보기엔 다소 심심하게 생긴 편이었다. 취미라고 할 것이 화려한 도시를 보는 것이니, 인테리어마저 화려하면 눈이 쉴 새가 없지 않겠는가. 그전에 취향이 아니기도 했고. 그래서 그의 집에 방문하는 이들 대부분이 들어오고서는 제일 먼저 하는 말이 있다. 첫 번째, 원예에 취미 들였어? 두 번째, 애인 생겼나 보네. 세 번째, 그 사람이 너 엄청 좋아하나 보다. …그 밖에도 더 있으나 이 세 가지가 제일 많았고, 보통 함께 던져졌다. 그럼 오비완은 이렇게 답했다. 첫 번째, 받은 거랑 산 거. 두 번째, 아니, 세 번째, 세 번째는……. 삼킨 한숨 대신 실없는 웃음이 나온다.

장미를 하나씩 늘려갈 때마다, 혼자서 유독 튀는 색채를 보며 집에서도 눈을 쉬지 못하는 것 아닌가 생각했다. 생각보다 새빨간 장미는 눈을 피곤하게 하지는 않았다. 집안 곳곳에 두어도 도시의 불빛만큼 가득 채워지진 않아서 그런 건지. 그보다는, 장미 향이 집안을 가득 채워서 오비완은 종종 가슴이 답답해지곤 했다. 이렇게나 많은데 당연한 거 아니냐고 하면, 이 집에서 생화는 단 한 송이라는 답을 돌려주겠다. 오비완이 사 온 꽃은 모두 조화였다. 인공적인 향이 강하게 나는 조화로, 그마저도 장미 향이 아니다. 받은 장미는 단 한 송이다. 그 한 송이의 장미 향이, 집안의 모든 향을 누르고 자신으로만 채웠다. 이 장미를 준 사람처럼 말이지. 오비완은 부드럽고 여린 꽃잎을 살살 매만졌다. 나를 사랑했니, 아나킨? 언제나 탐스럽고 싱싱하게 피어있는 꽃. 스치는 시선을 올가미처럼 잡아채는, 혼자서 수백만 송이의 향을 내는 장미.

 

 

 

그 애에게선 항상 장미 향이 났다.

 

 

 

 

 

 

 

 

 

 

아마도, 꽃과 정원, 미인의 조합은 실패할 일이 없는 그림일 것이다. 싫어하는 이도 거의 없을 테고. 적당한 햇빛, 선선한 바람, 일정한 물소리…테이블에 턱을 괴고 정원에 열심히 물을 뿌리는 뒷모습을 보자니 생각나는 장면이 있다.

 

 

"그때 꽃도 여기서 가져왔어?"

 

"언제요?"

 

"처음 만났을 때."

 

 

아……. 한숨 같은 한마디를 내뱉으며 오비완을 본 아나킨이 시선을 다시 앞으로 향했다. 분사기를 쥔 채 휘적이는 손이 영 성의가 없어졌다. 성의가 없다기보단 힘이 빠졌다는 게 맞나. 딱히 부끄러운 일도 아닌데 이 얘기를 꺼낼 때마다 유독 수줍어한다. 아나킨의 기준은 가끔 알 수 없는 것들이 있다.

 

 

"그걸 아직도 기억하고 있어요?"

 

"시대가 아무리 변해도 한품 가득 장미 다발을 들고 있는 사람은 강렬한 기억일걸."

 

 

의미 없이 물을 주는 걸 멈추고 멋쩍은 표정으로 힐끗 자신을 보는 이에게 고개를 까닥인다. "울고 있다면 더 못 잊겠지. 거기다 흉터도 달고." 중얼거리듯 덧붙인 말은 그리 크진 않았으나 딱히 작지도 않았기에 먼 거리가 아니었던 아나킨에게도 충분히 들렸다.

 

 

"평생 잊지 못할 추억 하나에 자리 잡고 있다니 기쁘다."

 

"추억이라고 말하는 자신감이 대단하다."

 

"장미 꽃다발을 든 채로 울고 있는 미인은 나쁘지 않은 기억 아닌가?"

 

"이걸 긍정적이라고 해야 하는지……."

 

 

어이없음과 안타까움이 섞인 목소리에 아나킨이 웃었다. "사실을 말하는 거죠." 자연스레 내미는 손을 오비완이 가만히 보기만 하자 손을 살랑살랑 흔든다. "내가 잡아줘야 하나?" 시선은 손에 둔 채로 하는 말에 아나킨이 당연하단 목소리로 말한다. "안 잡아줘야 하는 이유가 있나요." 많은데. 바로 나가려던 답을 삼켰다. 어린애도 아니고……. 불쑥불쑥 치솟는 경쟁 심리가 지겨우면서도 안도감이 든다. 사랑은 왜 이렇게 비이성적일까. 오비완은 웃으며 아나킨의 손을 잡고 일어났다.

 

 

"있어도 내색하지 않고 잡는 게 사회생활이긴 하지."

 

"세심하게 마음 좀 써줘요. 나는 장미 같은 사람인데."

 

"많은 사랑을 받는 만큼 품종 개량을 거친 덕분에 생각보다 강한 게 장미란다."

 

 

힘을 주기도 전에 쏙 빠져나간 온기가 허전해 아나킨이 입을 삐쭉 내민다.

 

 

"기본적으로 장미는 병충해에 약하다구요. 실내에서 기르기도 어려운 거 알아요?"

 

"평생 안 기를 거라 알 필요 없는데."

 

"기르고 있잖아요."

 

 

웃음이 가득 담긴 목소리에 옆을 흘깃 보니 양손으로 제 얼굴을 받치고 있는 아나킨이 보였다. 맑은 눈으로 이쁘게 미소 짓고 있는 모습이 참. 오비완이 걱정과 안타까움이 듬뿍 담긴 곤란한 표정을 짓는다.

 

 

"글쎄, 내가 생각보다 잘 죽이는 편이라……."

 

"살벌하기는……."

 

 

시든 꽃잎마냥 곱아지는 손가락을 다시 펴주며 오비완이 작게 웃었다. "들꽃은 손 안 타고 그냥 자라던 대로 두는 게 가장 좋은 법이지. 잘살고 있는 삶에 함부로 끼어서 되겠니?" 쳐다보는 시선이 따갑다. 이미 끼어들었으면서 무슨 소리냐 이거지. 대놓고 주는 눈치를 가볍게 무시하며 손가락을 쫙쫙 펼쳐 이쁘게 꽃받침을 만들었다. 만족스레 물린 자신의 손을 잡느라 금세 무너졌지만. 봐라, 생각보다 잘 죽인다니까. 자조적인 생각이 드는 건 어쩔 수가 없다.

 

 

"이미 끼어들었으면 그건 들꽃이 아니고 집꽃이죠. 손도 제대로 탔는데."

 

 

"집꽃은 또 뭐니, 동물도 아니고……." 어이없어하는 목소리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양손을 들어다가 제 얼굴을 받치게 한다. 오비완이 또 손을 빼지 못하게 아나킨이 자신의 손바닥과 얼굴로 손을 꾸욱 눌렀다. 그리 강한 힘은 아니었으나 위치가 위치인지라 힘을 줘서 손을 뺄 수가 없다. 꼴이 웃긴걸. …음, 전체적인 모습이 그렇다는 거다. 아나킨의 미모는 어지간해선 웃길 꼴이 될 수가 없다. 이대로 볼을 눌러 붕어 입술을 만들어도 귀엽기만 할 테다. 살짝 혹했으나 이미 뚱하니 튀어나온 입술이 있으니 일단은 볼을 문지르는 것으로 그쳤다.

 

 

"따지자면 꽃이 먼저 들이받았지?"

 

"꽃이 어떻게 들이받아요."

 

"그러게 말이다. 당할 때마다 신기하다니까. 말도 하는데 말귀는 없나 봐. 말 듣는 걸 본 적이 없어."

 

"꽃은 좋은 말만 들어야 이쁘게 자라거든요."

 

"좋은 말이 자기만 듣기 좋은 말이라는 거지. 참 편협한 꽃이로구나."

 

"원래 귀엽고 이쁘고 잘생긴 건 좀 그래도 됩니다."

 

 

갈수록…뻔뻔해지네. 구태여 말로 안 하고 게슴츠레 뜬 눈으로 의사를 전달했으나 실시간으로 뻔뻔함이 상승 중인 사람인지라 썩 소용이 없다. 오비완은 볼을 문지르고 있던 손에 힘을 더해 얼굴을 꾹꾹 눌렀다. "아, 안 돼. 못생겨진다. 못생겨진다구요 오비완!" 점점 강해지는 힘에 아나킨이 끙끙댄다. 아프게 누르진 않는다지만 계속 눌리고 있으니 제법 아플 텐데, 못생겨지는 거나 걱정하고.

여전히 못생기긴커녕 귀여웠지만 오비완은 아나킨의 말을 부정하지 않았다. 글쎄, 이게 콩깍지여서 그런 걸지도 모르잖아. 원래 뭘 해도 귀여우면 끝난 거라는데……. 사랑에 빠져도 객관성을 놓지 말자는 게 오비완 케노비의 인생 신조 중 하나다. 못생김에 몸부림치던 아나킨의 손에서 힘이 빠졌다. 놓치지 않고 쏙 빠져나오니 아주아주 불만스러운 얼굴을 한다. 그 왜, 그림으로 표현하자면 눈썹이고 입이고 꾸불꾸불 해져서는 심통이 난 얼굴 말이다. 그런 얼굴로 여전히 꽃받침을 하고 있다. 허이구. 안 이쁘다, 안 이뻐.

 

 

"언제까지 하고 있게?"

 

"흥, 글쎄요. 당신이 이뻐 해 줄 때까지?"

 

"한…3일 정도는 그러고 있어야겠네."

 

"우와, 3일 뒤에는 이뻐해 준다는 거죠? 너무 좋다.“

 

 

방싯방싯 웃는 모양새가 모든 사람이 자신을 사랑할 것이라 믿는 5세 이하 영유아의 그것이다. 아, 이게 좋게 보이는 게 얼굴 탓인지 사랑 탓인지 영 모르겠다. 둘 다인가? 정말 억울하지 않을 수가 없다. 가끔은 얘가 긍정적인 건지, 대책 없이 해맑은 건지 헷갈릴 뻔할 때가 생긴다. 헷갈리지 않는 것은, 아득하면서도 생생한 기억 때문이겠지. …우스운 일이다. 자신은 그렇게 빠져나가려고 하면서 다른 이에게는 덧씌우는 걸 못 멈추는 게, 얼마나, 얼마나…….

 

 

"…모를 일이지, 3일 뒤에 또 못나 보이는 짓을 할지."

 

"언젠가는 이뻐해 주겠죠."

 

 

언젠가는, 불확실한 가정을 말하면서 그 목소리는 확신을 말한다. 자신을 사랑할 수밖에 없을 거라는 것을 잘 아는 자의 목소리. 아나킨, 그거 아니? 네가 그럴 때마다 헤어지자는 말이 입안을 꽉 채우곤 해. 내뱉지 않고는 못 견딜 만큼 채워진 것은 억울하게도 입을 여는 순간 기화되지. 안에 있을 때는 그렇게 묵직했던 것이 출구를 만나면 어찌나 가볍던지. 말하지 못하는, 안 하는 것에는 수많은 이유가 있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당연한 명제라면 아마도,

 

 

"애교는 애인한테나 가서 하렴."

 

 

우리가 그런 말을 할 만한 사이가 아닌 게 가장 크지 않겠니?

 

 

 

 

 

 

 

 

 

 

"환기 좀 하고 살아."

 

"집에 들어서면서 그런 말 하는 거 너뿐이야."

 

"누가 자기랑은 어울리지도 않게 낭만적인 사람들하고만 어울려서 그렇지."

 

 

짜증스레 집안 곳곳의 창문을 열고 다니는 뒷모습을 따라 오비완의 고개가 바삐 움직였다. 창문을 열어도 워낙 향이 강해서 잔향도 오래 남고, 창을 닫으면 금세 다시 집안을 꽉 채우는 걸 알면서. 들어오자마자 창부터 여는 유일한 인물이다. 방문만 하면 무조건 하는 환기 작업은 의식 같아 보이기까지 한다. 1년 넘게 빠짐없이 하는 집념이니 과장은 아니지 않은가? 리타, 친애하는 나의 친구. 내 주변 사람 중에서 가장 삭막한 감수성을 가진 인물 되시겠다.

집안의 모든 창문을 열고 온 리타를 느긋하게 소파에 앉아 기다리던 오비완이 맞은 편에 앉은 그에게 작은 장미 꽃다발을 건넸다. 리타가 온다길래 기쁜 마음으로 사 온 생화였다. 바로 잡아채서는 신경질적으로 패대기친다. 저런, 매정해라.

 

 

 

"그 누구도 낭만은 없지만 향기는 좋다고 느끼는데."

 

"지지리 궁상도 아니고……."

 

"객관적인 걸 말한 거야."

 

"그래 이 못난 놈아."

 

 

오비완이 실없이 웃었다. 그 웃음이 꼴 보기가 싫었는지 리타의 얼굴이 대번에 찌푸려졌다. "진짜 궁상도 이런 궁상이 없다." 한심한 눈초리에도 오비완은 수염을 쓸어내리며 여전히 허허 웃기만 했다. 뭘 얼마나 살았다고 다 산 노인네 같은 행동을 하는지. 제 친구는 실연으로 돌아도 한참 돌아버린 것만 같았다.

 

 

"실연당했다고 이사도 해, 수염도 길러. 아주 가지가지…진짜 너 자는 새에 수염 없어졌으면 그거 나다."

 

"다시 기르면 되지 뭐."

 

"아우 꼴 보기 싫어 진짜. 내 인생에서 실연당했다고 난리 치는 거 제임스를 넘을 꼴불견은 없을 거라 생각했는데 네가 더 한다 아주."

 

"제임스랑 비교하는 건……너무 한데?"

 

"걔는 지랄발광을 하고 반년 후에는 깔끔하게 털기라도 했지, 너는 무슨 마지막에 받은 장미를 아주 주구장창 사대는데 누가 더 꼴불견이니?"

 

 

아니 그래도…제임스랑 비교하는 건……. 반박을 하려다가 말았다. 오비완이 생각해도 그 지랄이나 이 지랄이나 엇비슷하긴 했다. …그래도 역시 내가 나은 것 같은데? 적어도 민폐는 끼치고 다니진 않았잖아. 그리고 결정적으로 정말 다른 게 있다.

 

 

"실연당한 게 아니라는 말은 언제쯤이면 입력이 될런지."

 

"그래, 엄연히 따지자면 실연은 아니지. 짝사랑하다 차인 거니까."

 

"'차인 게 아니다'라는 문장 조합이 어려운 편이던가?"

 

"차인 것도 아니긴 하지. 그놈이 그냥 홀라당 사라졌으니까."

 

 

적극적으로 해명할 생각이었던 것도 아니라 오비완은 그냥 웃고 말았다. 그렇게 그냥 웃고 마는 게 속을 더 타게 한다. 하지만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것을 리타도 알고, 오비완도 알았다. 이건 배려였다. 괜찮은 척 숨기는 것을 아주 슬퍼하는 친구를 향한 배려. 해결을 바라지 않는 공유는 배려라기보단 상처지만, 이게 최선임을 둘 다 안다. 슬픔은 나누면 작아진다지 않은가. 어느 순간부터 오비완은 슬픔을 나누지 않았고, 나눠도 작아지지 않았다. '원래도 티가 나지 않았다지만 이 정도는 아니었는데.' 처음에는 화를 냈지만, 이제는 숨기지 않는 것만으로도 고마웠다. 오비완의 슬픔이 나눌 수 있는 종류에서 벗어났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적어도 감추다가 혼자 잠겨 죽는 것만은 막을 수 있다는 게 어딘가. 잡고 버티는 것밖에 못 하지만 그거라도 감지덕지다. 꺼낼 수 있는 사람은…….

리타가 바닥에 패대기친 장미를 들어 손으로 사정없이 짓이겼다. "장미는 죄가 없어, 리타." 매섭게 날아오는 눈초리에 오비완이 어깨를 으쓱였다.

 

 

"만약 그 녀석이 울고불고 돌아와서 후회한다고 너한테 매달리면 잘 해보라고 할 거지만,"

 

"그럴 일은,"

 

"그 잘난 얼굴을 반드시 갈겨주겠어."

 

"…없을 텐데."

 

"좋다고 웃을 네 얼굴도 후려칠 거야."

 

"좀 봐줘라."

 

 

말없이 주먹을 쥐어 내보이는 게 절대 봐줄 생각이 없어 보인다. 오싹하지만 무섭지는 않다. 리타의 저 야무진 주먹이 누굴 때릴 일은 일어나지 않을 테니까. 주먹을 휘두르는 것도 실체가 있어야 가능하지. 세상은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니 영혼을 때릴 방법도 있을지 모르지만, 아나킨, 부디 아무것도 남기지 않고 떠났길 바란다. 그래야 리타의 주먹을 피할 수 있지 않겠니? 생각보다 더 아프거든. 오비완은 제 손을 내려다봤다. 꽉 쥐어도 느껴지는 건 자신의 손뿐이다.

 

 

 

 

 

 

 

 

 

 

글쎄, 뭔지는 몰라도 오비완은 항상 무언갈 놓친 것만 같은 기분으로 살았다. 그 기분은 그대로 강박감이 되어 무엇을 하든 무조건 두 번 이상 체크하는 습관이 되었다. 이러한 점은 '오비완 케노비'라는 존재에도 영향을 미쳐 오비완은 자신이 항상 부유하고 있단 생각을 했다. 존재를 확인받는 방법은 무엇일까. 자신의 존재를 믿는 확고함? 다른 이와의 유대?

오비완은 잡아 줄 것이 필요했다. 땅에 자신을 박아넣어 줄 무언가가. 발을 딛고 걷고 달리고, 땅을 박차는 느낌이 선명한데 왜 이리 허공에 허우적대는 기분이 들까. 끈 없이 허공에 내던져진 기분이었다. 우주에 홀로 둥둥 떠 있으면 이런 기분일까. 오비완은 그래서 비행이 싫었다. 안 그래도 발이 안 닿아 허우적대는데 바닥에서 까마득히 멀어져서는, 땅이 수시로 변하는 게 영원히 그렇게 헤맬 것만 같아서. 그 느낌이 싫었다. 평생을 시달려 온 그 기분이 싫었다. 하늘을 나는 꿈은 누군가에게는 환상적인 꿈이겠지만 오비완에겐 최악의 악몽이었다.

뭐…괴로웠지만 죽고 싶을 정도는 아니었다. 산다는 게 다 그렇지 않은가. 어찌할 수 없는 괴로움 하나 정도는 안고 사는 거지. 싫기야 하지만 괜찮았다.

 

향수병을 심하게 앓으시네요.

 

출장을 간 곳에서 그 말을 듣기 전까지는. 이게 향수병인가요? 조금 멍청하게 되물었던 것도 같다. 자기가 유학 생활을 할 때랑 비슷한 것 같다며, 이제 곧 돌아가니 기운 내라는 응원을 받았었지.

오비완은 그 날 하루 내내 멍한 상태로 있었다. 이게 향수병이라고? 이게? 무엇에 대한? 오비완은 고향 땅을 밟은 제 발을 내려다보며 생각했다. 내가 그리워 할 것은 모두 여기에 있다. 가족, 친구, 일, 인생……. 오비완의 모든 것은 이 땅에서 나고 자랐다. 오비완은 평생을 무언가 놓치고 산 기분에 시달렸지만, 그렇기에 정말 중요한 것을 잘 보관해두었다. 물질적으로도 그랬고, 정신적으로도 그랬다. 차곡차곡 모아온 것들을 다시 한번 꺼내 살펴봐도 모든 것은 제자리에 있다.

그렇다면 이 기분은 대체 무언가. 뭘 이토록 그리워하는 거지? 나는 실체 없는 것을 계속해서 쫓아야 하나? 평생? 이렇게?

 

 

"…괜찮으세요? 가방 놓치셨어요."

 

 

…너를 봤을 때의 기분이 아직도 생생해. 무슨 생각을 하며 나에게 말을 걸었을까? 너는 엉엉 울고 있었지. 품에는 장미를 가득 안고, 한 손에는 내 가방을 들고 말이야. 아주 조용히, 서럽게 엉엉 울고 있었지. 그런 주제에 남의 가방을 신경 쓸 정신도 있고. 누가 봐도 참 이상해 보였을 거야. 넋 빠진 인간과 장미를 든 우는 미남이라니. 내가 그냥 보통의 넋 빠진 인간이었다면 화들짝 놀라 널 위로했을지도 모르지. 아니면 엮이고 싶지 않아 감사만 전하고 서둘러 갈 길을 갔거나. 또 아니면 아주 무례해서 요상한 상황에 우는 사람 앞에 두고 웃었을지도 모르고. 또 어쩌면, 그냥 영화같이, 드라마같이, 첫눈에 반했을 수도 있고…….

 

아. 아나킨. 내가 그때 얼마나 기쁘고, 얼마나 비참했는지 아니.

 

내가 놓친 가방을 네가 쥐여줬을 때, 비로소 알 수 있었단다. 내가 무엇을 놓쳤었고, 누구를 잊었으며, 어떤 것을 잃어버렸는지. 내 정체성은 땅에 발붙이지는 못했지만 하늘 아래에는 존재하여 그럭저럭 멀어지지는 않은 채 살아올 수 있었는데. 너를 본 순간 정말로 드넓은 우주로 던져졌지 뭐니. 정말로 미아가 되어버렸는데, 내 모든 것이 있는 땅에 영영 발을 붙일 수가 없게 되어버렸는데. 나는 너 하나를 움켜쥐었다는 것만으로 평생을 시달렸던 감각에서 벗어나 너무 기뻤단다, 비참하게도.

 

아나킨, 내 어린 파다완아.

 

 

 

 

 

 

 

 

 

 

"사랑이란 뭘까요."

 

"네가 하고 있는 거."

 

"진짜 오비완 갈수록 나한테 신경 안 쓰는 것 같아."

 

"나는 집꽃도 강하게 키우는 편이거든."

 

 

"집꽃이 뭐냐고 할 때는 언제고 잘만 쓰네." 투덜거리며 흘긋 오비완을 보지만 책에서 시선도 떼지 않은 채 관심 한자락도 안 준다. 아나킨이 슬픈 얼굴로 자신이 가져온 로즈마리를 보듬었다. "죽지 말고 잘 살아남아서 강하게 자라야 한다." 갓난애를 떠나보내는 목소리에 오비완이 쳐다보자 더욱 불쌍한 얼굴을 했다.

 

 

"우리 아기 잘 키워주셔야 해요."

 

"잘 키워주길 바라면 제발 그만 좀 가져오지 그러니……."

 

"그럴까요? 큰 거 하나 받아주면 끝이에요."

 

 

기다렸단 듯이 웃으며 얼굴에 꽃받침을 해 보인다. 틈만 나면 하니 참 정겨운 몸짓이 됐다. 음……. 오비완의 눈이 한번 도르륵 굴렀다 제자리로 돌아왔다. "잘 키워보마." 웃으며 뻗은 손은 큰 꽃이 아니라 작은 화분을 가져갔다. 큰 꽃이 금세 시들해졌다. "이러다 말라 죽겠어요." 아나킨이 턱을 괸 채 창가로 가는 오비완을 보며 삐죽거렸다.

창가에는 아나킨이 가져온 각양각색의 화초로 가득 차 있다. 이 로즈마리까지 하면 더 놓을 곳도 없다. 이미 집안의 모든 창틀은 물론이고, 협탁이나 서랍, 테이블 같은 데에도 자리가 꽉 찼다. '안 가져올 리는…….' 흘끔 아나킨을 보니 손을 꼽으며 화초 이름을 외고 있었다. '없겠군.' 조만간 화분 장식대를 사야겠다. 이러다 집이 정원이 되는 거 아닌지 모르겠네. 가져오는 거 보면 판매할 것까지 모조리 가져오는 거 아닌가 걱정이 들 정도다.

'꽃집 청년이라니.' 피식, 웃음이 흘러나왔다. 부들부들한 어감과 분위기가 안 어울리듯 어울린다. 하긴, 네 말대로 넌 섬세하고 예민한 아이였지. 웃음은 곧 씁쓸함이 묻어났다.

 

 

"다른 곳에서 물 잘 받으면서 뭘 그러니."

 

"다른 곳 어디요?"

 

"글쎄, 친구나, 손님이나, 애인이나."

 

 

이런, 잎이 상했네. 물을 많이 줬나? 햇빛이 너무 강한 자리였나? 창가 마지막 자리에 화분을 올리다가 바로 옆 화분 잎이 시들한 걸 발견했다. 이상하네. 괜찮은 것 같았는데……. 조금 기운이 없긴 했던가? "아나킨, 와서…." 상태 좀 봐 달라고 부르기 위해 고개를 돌렸더니만 표정이 어째 묘하다. 입을 닫고 가만 보고 있으니 곧 토라진 얼굴을 한다. 이렇게 숨길 의지가 없는 작위적인 표정 변화라니.

 

 

"애인 없는 거 뻔히 알면서 왜 자꾸 그러실까."

 

 

그래, 그러시겠지. 오비완이 부러 어린 동생을 보는 표정으로 미소 지었다.

 

 

"생기면 가서 하란 얘기지."

 

 

"아무렴 네 얼굴에 평생 혼자겠니?" 고개를 돌려 다시 힘이 없는 화분을 들어 살펴보았다. 음, 이게 뭐였더라. 국화랑 수국 중간 사이처럼 생겼네……. "천수국이에요." 어느새 다가온 아나킨이 꽃을 매만졌다. "분갈이를 해야겠네요. 잘 돌봐줬나 봐요, 오비완." 오비완은 말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그래, 네가 준 거잖아. 어떻게 함부로 대하겠니. 올라오던 말을 꾹꾹 삼켰다. 어쩌면 별거 아닌 말이다. 가볍게 말하면 듣는 이도 무게를 느끼지 않을 법한 말. 하지 않는 이유는, 애착이 너무 티 날까 봐? 하하. 뭐, 아예 틀린 말은 아니다. 자기 자신을 질투하는 게 티 나는 건 좀 꼴불견이잖아.

 

 

"솔직히 말하면 저 애인 있어요. 그 사람이 몰라서 그렇지."

 

"나도 아마 애인이 있을 거다. 아직 둘 다 몰라서 그렇지."

 

"나는 알 것 같은데."

 

"모를 것 같은데."

 

"아뇨." 아나킨이 웃었다. "모른 척 한다는 걸 알죠. 둘 다." 부드러운 손길로 오비완의 손에서 화분을 빼간다.

 

"화분은 갈아서 다시 가져올게요."

 

 

"오늘은 이만 가볼게요. 잘 있어요." 문으로 향하는 뒷모습을 오비완은 멀거니 보았다. 분갈이를 한 꽃은 창가에는 못 올라갈 것이다. 조금만 커도 다른 화분들을 밀어낼 테니까. 이미 화분이 꽉 들어찬 자리에 억지로 밀어 넣으면 다른 화분들은 바닥으로 떨어져 깨지겠지.

'어디에 놓지.' 장식대를 산다고 해도 사실 마땅히 놓을 곳이 있는 건 아니다. 그냥 발에 채이지 않게나 하려는 거지. 창가에 있는 화초도 인테리어와 그렇게 맞는 건 아니다. 완전히 이질적인 것도 아니긴 하지만. 갑작스레 들여놓게 된 것 치곤 나름 어우러지고는 있다. 그래서 정리하지 않고 그냥 두는 것이다. 그렇다고 계속 두면 어지러워질 것을 안다. 하지만,

 

 

"안다고 뭐가 달라지겠니."

 

 

네가 어떤 과정을 거쳤는지 알 수 없지만, 갑자기 기억이 들이닥친 나는 잘 모르겠어. 아나킨, 내가 '오비완'과 같아 보이니? 난 아니라고 생각했거든. 근데 말이지, 문득 정신을 차려보면 비슷한 행동을 할 때가 있어. 내가 참 잘 안 놀라는 성격인데, 살면서 그렇게 깜짝 놀란 적은 처음이었단다. 그 자리에서 바로 나와 '오비완'의 같은 점과 다른 점을 하나하나 꼽아봤지. 근데 헷갈리는 거야. 이걸 옛날부터 좋아했던 것 같은데, 옛날부터 싫어했던 것 같은데, 그 옛날이 언제인지 도무지 모르겠지 뭐야. 그래. 나는 잘 모르겠어. 아나킨, 널 좋아하는 건 누구일까.

 

 

 

 

 

 

 

 

 

 

그래, 오비완도 안다. 언제까지고 피할 수만은 없다는걸. 회피가 나쁜 것은 아니지만 인간관계에서는 대부분 나쁜 쪽의 원인이 되니, 최악으로 끝내고 싶은 게 아니라면 반드시 해결해야 하는 문제였다. 오비완도 이렇게 무턱대고 피할 생각은 없었다. 하지만 해가 지날수록, 말을 하기가 더 어려워졌다. 경계가 명확해지긴커녕 흐려지기만 했다. 오비완은 적어도, 제 감정만큼은 확고히 하고 말을 해주고 싶었다.

그게 나에게도, 너에게도 예의일 테니까. 말할 수 있을 거라고, 할 수 있을 거라고…….

 

 

"당신 앞에만 서면 왜 이렇게 조바심이 생기는지 모르겠어요."

 

 

물소리 사이로 예사로운 목소리가 비집고 들어왔다. "그렇게 오랜 세월을 살았는데도, 당신한테는 어린애가 되고 마는 건지." 웃음기가 섞였으나 보이는 건 뒷모습뿐이라 즐거운 것인지 자조인지는 구분할 수가 없다. "아니면 내가 계속 어린애로 봐줬으면 싶은 걸지도 모르고요.“

어쩌면 내가 계속 어린애로 남아줬으면 하는 것을 아는 걸지도 모르지. 오비완이 눈을 꾹 감았다. 네 탓이 아니라고 말하고 싶다. 하지만 정말 네 탓이 아닐까? 위로하는 게 옳은 것일까? 내가 자격이 있나? 네게는 들을 자격이 있나? 말하고 싶어 하는 건 누구고, 막는 건 누굴까. 아니면 결국 이것도 단 한 사람이 하는 고민인 걸까?

아나킨, 내가 누구로 보이니?

 

 

"항상 오비완을 찾아간 건 아니었어요. 다른 사람도 찾아봤죠. 근데 여전히 잘 모르겠어요. 오비완, 사랑이 뭘까요? 왜 나는 당신이 아니면 안 되는 걸까요?"

 

"…내가 두 번째가 아니구나."

 

 

오비완의 말에 멈칫한 아나킨이 고개를 돌렸다. "처음이 아니냐고 묻질 않았네요." 웃는 얼굴을 보며 덤덤히 답한다.

 

 

"그 말도 두 번째는 아닐 테고."

 

"아무래도 그렇죠."

 

"아나킨, 너는,"

 

"기억이 있죠. 언제나 있었어요. 나는 그냥 아나킨이에요, 오비완. 나는 한 번도 아나킨 스카이워커가 아니었던 적이 없어요."

 

 

마주치는 눈에는 언제나와 같은 감정이 담겨있다. 아나킨 스카이워커가 오비완 케노비를 보는 눈. 달싹이던 입술이 꾹 다물어졌다가 이내 다시 열렸다. "다행이구나." 아나킨의 웃음이 짙어졌다. 덧칠해진 색이 어떤 감정인지는 알 수 없다. 어린애가 짓기에는 힘든 표정이지. 쉽사리 파악할 수 없는 표정을 지을 줄 알만큼의 시간을, 그의 아이는 걸어왔다. 아나킨을 가만 보던 오비완이 미소지었다.

 

 

"잘 지냈니?"

 

"잘 지냈죠. 언제나 당신이 보던 대로."

 

 

물소리가 그쳤다. 오비완에게 다가온 아나킨이 그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았다. 순하게 앉아 자신을 올려다보는 옛 제자의 머리를 오비완은 느리게 쓰다듬었다. 아나킨이 오비완의 허벅지에 머리를 올리고 눈을 감았다.

 

 

"오비완이 기억을 찾는 시기는 항상 제각각이었어요. 당신이 먼저 찾아올 때도 있었죠. 사랑한다 말할 때도 있었고, 증오한다 말할 때도 있었어요. 용서한다고도 했고, 아무래도 상관없다고 한 적도 있고……. 많아요. 기억나지 않을 만큼. 그때마다 저는……."

 

 

아나킨이 눈을 뜨고 고개를 들어 오비완을 빤히 보았다.

 

 

"당신을 봤어요. 제가 할 수 있는 건 많이 없으니까요."

 

"……."

 

"처음 만났을 때 기억하시죠."

 

"글쎄다, 사막?" 아나킨이 웃으며 머리를 쓰다듬는 손을 조심스레 잡아 입을 맞췄다. "아니요, 장미."

 

"그 전부터 보고 있었다고 하면 징그러울까요?"

 

"옛정을 생각해 긍정은 안 하도록 하마."

 

"현재의 정으로는요?"

 

"징그러운걸."

 

"서운해라."

 

 

어느새 오비완의 양손을 가져오고는 보물이라도 되는 양 소중히 매만지던 아나킨이 손바닥에 얼굴을 묻었다. 어리광을 부리는 것 같기도, 고해성사를 하는 것 같기도 한 모양새였다.

 

 

"제가 하는 게 사랑일까요?"

 

"……."

 

 

"아나킨." 부드러운 목소리에도 아나킨은 요지부동이었다. 이제와 무엇이 두려워서. 이전에 무엇을 경험했길래 갑자기 이리도 약해지는지. 오비완은 몸을 숙여 어린 제자의 머리에 입을 맞췄다. 우물거리는 입술이 손바닥에서 느껴진다.

 

 

"날 사랑했나요, 마스터?"

 

 

무슨 대답을 원하니, 내 파다완. 오비완은 눈을 감았다. 무슨 대답을 원하는가, 오비완 케노비.

 

 

"그때 장미 말이다." 오비완이 느리게 입을 열었다. "누구를 주려 했냐고 물었더니, 때가 되지 않아 못 준다 했지. 기억하니?"

 

"…네."

 

"생각해보니, 장미를 받아본 적이 없더구나. 넌 항상 장미 향이 났는데 말이야."

 

 

오비완이 숙였던 몸을 폈고, 아나킨도 고개를 들어 오비완을 보았다. 아나킨의 얼굴을 쓰다듬는 손길이 봄날 바람보다도 나긋하고 따스했다.

 

 

"네 덕분에 이제는 화초를 제법 잘 기르지 않니. 장미도 할 수 있겠지."

 

 

이마에 가벼운 입맞춤을 남긴 오비완이 아나킨을 일으켰다. 무릎의 흙을 툭툭 쳐내 정리해 주는 모습을 아나킨은 말없이 쳐다보았다. 일을 끝마친 오비완이 얌전히 저만을 바라보는 아나킨을 보고는 웃었다.

 

 

"기다리마."

 

 

 

 

 

 

 

 

 

 

아나킨을 다시 만난 건 꽤 오랜 시간이 흐른 뒤였다. 얼굴이 좋아 보이는 것도 같고, 아닌 것도 같고……. 현관에 서서는, 그저 오비완을 보기만 했다. 아나킨도 들어가겠다는 말을 하지 않았고, 오비완도 들어오란 말을 하지 않았다. 한참을 서로 보기만 하다, 아나킨이 등 뒤로 숨겼던 손을 내보였다. 장미 한 송이가 담긴 화분. 오비완이 입을 열었다.

 

 

"때가 됐니?"

 

"글쎄요. 저도 잘 모르겠어요. 하지만 꽃이 피었고, 당신이 기다린다고 했으니까……."

 

 

양손으로 꼭 잡고 있는 화분을 보며 오비완이 쓰게 웃었다. 장미가 약하게 떨리고 있었다. 마음이 이렇게 여려서야. 손을 들어 화분을 잡고 있는 손을 감싸고 또 한참을 있었다. 아나킨의 손에서 서서히 힘이 빠졌다. 그 손에서 천천히 화분을 가져왔다. 손끝에 걸쳤을 때 잠깐 움찔하긴 했지만, 붙잡는 일은 없었다.

 

 

"향이 좋구나."

 

"……."

 

 

장미를 보며 꽃잎을 매만지는 오비완의 볼에 아나킨이 조심히 손을 올렸다. 자신이 하는 대로 순순히 고개를 올린 오비완을 보며 속삭인다.

 

 

"키스해도 돼요?"

 

"아니."

 

 

웃으며 하는 답에 아나킨도 웃었다. 입술 대신 이마에 입을 맞춘다. 과거 오비완이 해줬던 것처럼.

 

 

"오비완, 다음에 또 봐요."

 

 

너는 헤어질 때면 항상, 잘 있으라 인사를 했지. 보고 있기만 해도 벅찰 만큼의 감정이 가득 담긴 눈을 오비완은 오래도록 들여다봤다. 아나킨의 손이 얼굴에서 떠나고서야 오비완은 천천히 문을 닫았다. 아나킨은 문이 완전히 닫힐 때까지 떠나지 않았다. 문을 닫은 뒤로도 오비완은 우두커니 앞에 서 있었다. 문을 열면 여전히 아나킨이 있을 것만 같다. 입을 달싹이던 오비완은 이내 눈을 꾹 감았다 뜨고는, 몸을 돌렸다.

오비완은 답하지 않았다. 장미 향이 그새 집안을 가득 채웠다.

 

 

 

 

 

 

 

 

 

 

사람은 살아온 기억으로 쌓인다지. 그렇다면 나는 어떨까. 깨닫지 못했던 걸까, 먹히고야 만 것일까? 하긴, 이제와 무슨 상관이겠어. 이 오비완이든 저 오비완이든 널 사랑하는데. 내 항성은 언제나 너였지. 네가 존재했었던 것만으로도 나는 이제 발을 붙이고 살 수 있다. 하지만 너는 아주 먼 곳에 있어, 나는 여전히 지독한 향수병을 앓을 수밖에 없다.

 

나는 네게 몇 번째 오비완이었니? 수백, 수천, 어쩌면 수만일까? 그리 많지는 않길 바란다. 너에게 너무 가혹했을 테니. 다 지난 일에 그러지 않기를 바라는 게 미련해 보이겠지만, 내가 붙잡을 게 이제 미련밖에 더 있겠니. 뭐, 질투라 해도 좋다. 아니, 맞는 말이지. 어쩌면 너도 알았을지 모르겠구나.

첫 번째는 될 수 없어도, 끝은 되었으면 좋겠어. 사랑이든 아니든 말이야. 그게 마지막 남은 '내' 바람이다.

 

네가 떠난 후부터 계속 생각하는 게 있어. 다음은 내가 아닐까? 그렇다면 주체는 누가 되는가. 최초의 오비완? 아니면, 너를 보내준 나? 구분 짓는 게 의미 없다 여기면서도 멈출 수가 없는 건 앞서 말했듯이 미련밖에 붙잡을 게 없어서 그러니 이해해주렴.

네가 물었지. 네가 하는 게 사랑이냐고. 글쎄, 나도 잘 모르겠구나. 하지만…사랑이지 않을까? 받아줄 사람이 사랑이라 여기니, 사랑이라 생각해도 괜찮지 않겠니. 폐만 끼치지 않으면 됐지. 안 그래?

 

네가 어디로 갔을까, 하루종일 생각하기도 한단다. 나는 네가 땅으로 갔길 바랐어. 그래야 네가 보고 싶어 어쩔 줄 모르겠는 날에는 조잡한 위안 삼아 땅이라도 파볼 수가 있을 테니.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너는 하늘로 가버린 것 같아서. 이럴 줄 알았으면 우주 비행 관련으로 직종을 얻을 걸 그랬지, 멀거니 하늘을 올려다보기만 했다. 비행을 싫어했던 것이 우습게도 말이다. 그래, 사실 옛날도 비행 자체를 싫어한다기보단 부가적인 것들이 싫어 그랬지.

그마저도 이제 더는 보지 않는다. 오래 보아 뭐 하겠는가. 네가 어디 있는지를 모르니 온통 너이기만 한 것을. 그래서 하늘 가까운 곳에 집을 얻고 하염없이 땅을 보았다. 땅을 파볼 수 없는 대신의 위안이다.

 

네가 준 장미를 보고 있자면 종종 이 장미가 시든다면 무슨 일이 일어날까, 궁금증이 일어날 때도 있다. 부디 그러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는지, 그러기를 바라는지 나도 알 수가 없구나. 하지만 시들 일은 없을 거란다. 스승이 제자가 준 것을 함부로 해야 쓰겠니.

나는 이제 하늘을 잘 보지 않아. 그냥 하염없이 땅에 있는 별빛 같은 조명을 보기만 하지. 어쩌면 그게 정말 떨어진 별이지 않을까 해서. 너는 항상 나를 봐왔다고 말했지만, 나에게는 유성우처럼 갑자기 나타났으니까…….

 

아나킨, 나는 오늘도 혜성이 스치기를 기대하고 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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