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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t Me Down Slowly - Alec Benjam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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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et me down slowly 

 억 수   @The_Downpour 

   적막만이 흐르는 공간은 시간이 흐르지 않는다. 숨을 들이마시기만 한 채 내뱉지 못하는 느낌이었다. 그가 집 안으로 들어오는 순간이 바로 그랬다. 문이 열리자 공기의 순환이 바뀌고, 밖의 날씨가 안으로 새어 들어왔다. 그제야 현실을 체감하듯 오비완은 감은 눈을 지그시 떴다. 현관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차츰 멎어가도 고개를 틀지 않았다. 둘 중 누구도 서로에게 향하는 시선은 그저 사치일 뿐이었다. 조용한 걸음으로 방문을 굳게 닫는 소리를 들으며 오비완은 무릎에 놓은 찻잔을 들고 일어나 정리를 한 뒤 그의 방 앞으로 한 걸음 다가가다 이내 방향을 틀어 자신의 방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문 손잡이를 붙잡았다. 굳게 닫힌 그의 방문을 바라보다 이내 고개를 숙인 채 방 안에 자신을 가뒀다.

 

   잠에서 깼을 땐 그가 이미 집을 나간 후였다. 집안은 고요했다. 돌아올 사람을 기다리는 정적이 아닌 그 어떤 희망을 잡을 수도 없는 삭막함이 집안을 에워쌌다. 이곳엔 그 흔한 화분 하나 없다며 내심 아쉬워했던 지난날을 다행으로 생각해야만 했다. 생명이 질긴 이름 모를 잡초도 이곳에 온다면 반나절도 못 가 시들어버릴 테니 말이다.

 

   우리는 오랫동안 대화를 나누지 않았고 그의 시선이 더는 저에게 있지 않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오비완은 침묵이 이곳을 좀먹고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애써 외면하며 차갑게 돌아선 그의 뒷모습을 붙잡지 못했다. 아니, 그러지 않았다. 이 모든 것이 운명이라면. 그럴 수밖에 없는 거라면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지 않은가. 그런데 왜 나는 너를 놓을 수가 없는 걸까. 그를 내치면 될 일이었다.

 

 

 

 

***

 

 

 

 

   언젠가 악몽을 꾼 듯 땀을 뻘뻘 흘려 차가워진 옷을 벗지도 않고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뜨릴 것만 같던 그를 달래준 적이 있었다. 아나킨은 발소리를 최대한 내지 않은 상태로 오비완의 방에 들어와 바닥에 주저앉고는 침대에 머리를 박은 채 그의 손만 부여잡고 있었다. 잠에서 깬 오비완은 눈앞에 보이는 검은 물체에 흠칫 놀라더니 이내 아나킨인 것을 알고 그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또 악몽이라도 꾼 것 같구나.”

 

   오비완은 최근 들어 계속 악몽을 꿔 수척해진 아나킨을 걱정하며 잠긴 목소리를 다듬곤 말을 이었다.

 

   “이번엔 무슨 악몽을 꿨길래 머리까지 젖은 거니.”

 

   “…….”

 

   오비완은 아무 대답이 없이 자신의 손만 만지작거리는 아나킨을 보며 무언가를 골똘히 생각하다 결심한 듯한 표정을 내보이며 입을 열었다.

 

   “…재워주랴?”

 

   아나킨은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보았다.

   아나킨이 저의 파다완이었을 적이 떠올랐다. 잠이 오지 않는다 칭얼대던 녀석을 잠결에 받아주곤 했다. 며칠을 계속 그러자 처음엔 그저 엄마의 그리움과 낯선 환경에 익숙해지지 못해 그나마 편한 저에게 하는 일시적인 행동일 줄만 알았으나 컴컴한 방 안에 깨우기조차 미안할 정도로 곤히 잠들어 스승의 손만 조심스레 만져대던 그 어린 소년은 커갈수록 오비완의 옆자리를 너무나 당당하게 꿰차버렸다. 그의 행동을 아무렇지 않게 받아주던 오비완도 조금씩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아무리 아이라지만 제다이의 길을 걷게 된 이상 누군가에게 기대는 것은 좋지 못할뿐더러 애착은 금물이었다. 그러나 저를 향한 아나킨의 눈빛은 절박했고 간절했으며 기댈 수 있는 유일한 존재라 여기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런 아이를 모질게 내치자니 마음이 걸렸고, 애착이니 규율이니 다 집어던지고 품자니 아이의 미래가 걱정되었다. 결국 오비완은 보이지 않는 선을 그었다. 아나킨에겐 그게 더 잔인한 줄도 모르고.

 

   “옷은 벗는 게 좋겠는데.”

 

   아나킨이 그의 말에 눈썹을 찡그리자 오비완은 얕게 웃음을 내보이며 다시 그를 향해 속삭였다.

 

   “다 젖은 옷을 뭐 하러 입고 있냔 말이야. 그러다 나까지 감기 걸리겠구나.”

 

   이상한 생각을 한 건 아니길 바란다, 아나킨. 그는 손바닥으로 빈 곳을 툭툭 쳤다. 그제야 불안해 보이는 얼굴이 조금씩 풀어지더니 옷을 벗고 그의 품에 파고들 듯이 안겨 누웠다. 오비완은 차가워진 그의 등에 손이 닿자 움찔거렸으나 이내 등을 토닥이며 그의 머리를 쓸어 넘겨주었다. 무엇이 너를 이리 괴롭게 했을까. 이때까진 알지 못했다. 알 수 없었다.

 

   “당신은 아직도 내가 많이 밉겠죠?”

 

   아나킨은 고개를 들지 않은 채 말을 건넸다. 오비완의 표정을 보기 두려워했음이 틀림없었다. 그는 말없이 아나킨의 머리를 쓰다듬더니 양손으로 그의 얼굴을 조심스레 만지자 어딘가 불안해 보이는 그의 두 눈이 저를 응시하고 있었다. 창문을 꿰뚫고 들어오는 달빛이 그의 에메랄드색 눈동자와 마주했다. 오비완은 그 빛을 따라 그에게 다가가 입을 맞췄다.

 

   “전혀.”

 

   아나킨은 그의 침대에서 일어나 곤히 잠든 그를 물끄러미 바라보다 눈썹을 찌푸리며 손바닥에 얼굴을 파묻곤 자신을 괴롭힌 악몽을 다시 떠올렸다. 다른 이가 제 꿈을 본다면 이게 무슨 악몽인가 생각하겠지만 그에겐 최악이나 다름없었다. 오비완을 정말로 사랑해버리는 꿈을 꿨다. 그 어떤 불행도 없이 온전히 그를 사랑하는 꿈. 이러면 안 되는 걸 알면서도 제멋대로 구는 저 자신이 증오스러워 도망쳐야 했고 밀치고 밀어내도 아낌없이 사랑을 주는 그가 미웠다. 꿈속에 나타난 두 개의 자아가 끊임없이 부딪혔다. 그때 당신은 나에게 이러지 않았잖아. 왜 이제 와서 이러는 거야. 원망밖에 남지 않은 내게, 왜 이제 와서. 아나킨은 그와 맞잡던 손의 온기를 느끼곤 싸늘한 표정을 지은 채 침대에서 일어나 그의 곁을 벗어났다.

 

   손을 내밀었다. 오비완은 차오르는 눈물을 억지로 참아 눈가가 붉어진 베이더와 눈이 마주치자 다시 그의 손을 바라봤다. 사랑만으론 함께할 수 없다는 것을 알기에 새로운 힘을 얻었고 더욱이 당신과 함께라면 광활한 은하계를 손에 넣는 것은 단 숨일 거라며 함께하자는 베이더의 목소리엔 희망마저 담겨있었다.

   모든 것이 죽어가 폐허만 남은 자리에 희망이라니. 오비완은 끝내 그의 제안을 수락하지 않았다. 손에 쥐고 있던 라이트 세이버를 땅에 내려놓으며 말했다.

 

   “너와 함께하느니 차라리 죽어버리는 게 났겠구나.”

 

   아나킨은 허, 하고 어이없다는 듯 한쪽 입꼬리를 들어 올렸다. 우습다. 마음만 먹으면 당신은 얼마든지 나를 죽일 수 있다는 걸 알고 있다. 그런데도 나를 죽이지 못하고 자신의 목숨부터 내놓는 것은 동정인가, 사랑인가. 사랑이라면 내 곁으로 왔어야지. 그랬어야지.

 

   “당신한텐 애착이 문제겠죠. 비겁한 제다이들이 만들어낸 그 말도 안 되는 규율 말이에요. 이제 그만 인정해요. 당신은 날 사랑하잖아.”

 

   “…아니. 널 사랑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거짓말.”

 

   “…….”

 

   “거짓말!”

 

   아나킨은 악에 받쳐 소리를 질렀지만 오비완은 끝끝내 부정하지 못했다. 이렇게 될 줄 알면서도 그를 내치지 못했고 그저 시간이 지나면 누그러들겠지 하는 마음은 그를 더 불안하게 만든다는 걸 뒤늦게 서야 깨닫게 되었다. 이 모든 게 나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 손을 잡는다고 달라지는 게 있을까. 더 이상 베이더에겐 아나킨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결국 그는 죽지도 베이더를 죽이지도 못한 채 평생을 도망쳐야 했고 베이더는 그에게 살아있을 틈을 주되 점점 힘겹게 만들었다.

   베이더는 그를 죽일 생각은 없었다. 증오가 대부분이었지만 그가 바란 건 제 손을 마주 잡은 그의 손, 제 곁에 있는 그를 원할 뿐이었다. 모든 권력과 힘을 얻었음에도 베이더는 끊임없이 그를 원했다. 오비완만 원했다. 그 언젠가 저가 보는 앞에서 처참하게 죽어버린 그 모습마저도 원하고 또 원했으나 그의 죽음마저 가질 수 없다는 분노는 점점 참을 수 없이 터져 나왔다.

 

   “당신을 증오해!”

 

   오비완은 피를 토하고 헐떡거리면서 격분한 베이더를 하염없이 바라볼 뿐이었다. 베이더에게 그 이후 눈에 보이는 대로 모든 것을 몰살시키고도 가라앉지 않던 분노가 말끔히 없어졌던 건 더는 오비완을 볼 수도 만질 수도 없다는 사실이었다. 육신은 살아있으나 정신은 살아있는 것만도 못했고 살 가치를 느끼지 못한 베이더는 끝내 자신을 죽였다.

 

 

 

 

***

 

 

 

 

   처음엔 이 정도 까지는 아니었다고 생각했으나 아나킨의 행동은 날이 갈수록 저 자신을 궁지로 몰아넣게 했다. 녀석이 그러리라곤 상상도 못 했으니 말이다. 아나킨이 악몽을 꿨던 그 날 이후로 눈이라도 마주쳐 대화를 나누려고 하면 단답형으로 대화를 끊어버리기 일쑤였고, 술에 취해 들어오는 날이면 오비완을 없는 사람 취급하기까지 했다. 처음엔 그저 짓궂은 장난이겠거니 싶어 그 장난에 넘어가 주는 척 아무 말 하지 않고 며칠을 보내기도 했다. 그가 진심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오비완은 난감했다. 대체 왜? 라는 의문만이 그의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그와 수많은 언쟁을 벌이고 난 뒤 알았다. 저를 향한 사랑은 진심이 아니었다는 것을. 그 속엔 아나킨이 아닌 여전히 베이더로써, 사랑보다 증오가 더 많이 그를 차지하고 있었다. 오비완은 고개를 떨궜다.

 

   “차라리 죽어버리는 게 나았을지도 모르겠구나.”

 

   내가 말이다. 오비완은 속으로 덧붙였다. 그때나 지금이나 녀석을 원망하기보단 자신을 탓하는 게 제일 쉬운 길이었다. 오비완은 쉬운 길을 선택했을 뿐이다. 저만 없었다면 아나킨이 아직도 이러고 있진 않았겠지. 온몸에 증오로 가득 차 다시 주어진 삶을 이런 식으로 허무하게 보내진 않았겠지. 나를 정말 사랑하지 않은 거라면. 그런 거라면.

 

   “정말 여전하네요.”

 

   아나킨은 비죽거리며 말했다.

 

   “…….”

 

   오비완은 과거 제다이로서 감내해야 했던 것들로 인해 모든 인연과 운명의 끝을 생각하게 되었다. 겪지 않아도 될 상황을 모두 견뎌야 했고 의미마저 사라진 감정의 끈을 무의미한 것이라 여기기도 전에 잘라내야 했기에. 제다이가 남겨준 최후의 선물이자 잔인한 영광이었으며 모든 기억은 쓰디쓴 악몽과도 같았다. 그럼에도 우리는 끝까지 견뎌왔고 이겨냈다고 생각한 사랑이 사실은 분노와 증오로 가득 차 있었음을 알게 됐을 때의 그 감정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또 달아나야 하는 것일까. 그러나,

 

   “당신이 내 앞에서 무너지길 바랐어요. 그것뿐이에요.”

 

   “네가 원한 게 내 절망이라면 진작 말하지 그랬어. 얼마든지 떠나줄 수 있었을 텐데.”

 

   “당신은 떠나지 못할 거예요. 나를 사랑하니까요. 그것 말고 더한 절망이 어디 있겠어요.”

 

   “도대체 왜 이러는 거니.”

 

   “어린 제자의 투정이라고 생각해주세요. 당신을 끝내 갖지 못했던 어린 제자의 투정 어린 복수.”

 

   아나킨은 천천히 그에게 다가가 품에 안았다. 그의 온기가 오비완의 품에도 전해졌으나 감정까지 느낄 순 없었다. 오비완은 자신이 왜 이러는지조차 이해할 수 없었지만 이내 차갑게 미끄러져 가는 그의 품속에서 눈에 보이지 않는 감정의 끈을 잡으려 애썼다. 상대가 내친 사랑을 다시 주워 담으려는 것만큼 비굴한 일이 또 있을까. 오비완은 입을 굳게 다물며 다급히 아나킨의 손을 잡았다.

 

   “내가 어떻게 하면 좋겠니. 어떻게 해야…”

 

   “아무것도 하지 말아요. 그저 지금처럼만 저를 사랑해주시면 돼요.”

 

   오비완은 아나킨의 말을 듣고도 고개를 저으며 그에게서 떠날 수 없었다. 그의 완벽한 패배였다.

 

 

 

 

***

 

 

 

 

   지금이라도 헤어지자는 말 한마디면 상황은 종결될 것이다. 아나킨은 고개를 끄덕이며 미련 없이 그를 떠날 것이 분명했다. 오비완에겐 그게 문제였다. 미련 없이 떠난 아나킨의 빈자리를 느끼면서 후회할 제 모습이 떠올랐다. 실로 오랜만에 느껴보는 좌절이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제 모습이 한심했지만 이렇게밖에 할 수 없는 이유는 단 한 가지였다. 사랑. 사랑이었다. 애초에 그를 사랑하지 않았으면 될 일이었다. 여전히 그에게 선을 긋고 마음을 내어주지 않았으면. 오비완은 허리를 굽혀 양손을 얼굴에 묻곤 긴 한숨을 내쉬었다. 다시 그때로 돌아간다고 하더라도 나는 똑같은 선택을 할 테니.

 

   I hate you!

 

   오비완은 과거 베이더의 일을 떠올리곤 눈을 질끈 감았다. 분노와 증오에 찬 눈빛. 원망 가득한 절규, 그 모든 것을 단 하루도 잊어본 적이 없다. 그러나 오비완은 그가 다시 돌아와 제게 고백을 했을 땐 내치지 못했다. 일말의 희망을 꿈꿨다. 모든 아픔을 잊고 서로의 얼굴을 마주 보며 다시 웃을 수 있을 거란 희망. 오비완은 간과했다. 서로가 서로에게 남긴 짙게 벤 흉터는 옅어질 것이고 그날의 아픔 따윈 생각나지 않을 거라고. 그러나 아나킨의 속엔 여전히 분노가 이글거린 듯했고 그것은 옅어질 기미조차 보이지 않았으며 결국 서로에게 더 깊은 상처를 남겼다.

 

   어쩌면 그가 먼저 자신을 내칠 수도 있을 거라 생각했다. 내가 먼저 그럴 생각은 없으니까. 녀석이 그래 준다면 다행이다 싶어 피식 웃었지만 곧이어 차오르는 눈물에 고개를 떨구고 말았다. 아나킨의 손에 가시라도 돋은 듯 조심스레 맞잡으며 시작한 사랑에 온몸을 던지는 쪽은 이제 자신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따듯한 햇살이 굽어진 그의 등을 토닥여주었지만 다가오는 어둠은 그게 무슨 소용이냐는 듯 그를 더 외롭게 만들었다. 해가 완전히 지고 난 후 집안이 어둑어둑해진 뒤에야 오비완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주위를 둘러보자 그가 느낀 것은 삭막함 뿐이었다. 예전에는 이곳이 어떤 모습이었던가. 기억조차 가물가물해져만 갔다. 집에 있는 거라곤 최소한의 물품들과 두 사람뿐이라 한적해 보여도 다정함으로 가득 차 온 집안이 따사로웠다. 그런 곳이 지금은 너무나도 냉랭하고 허전하며 모든 게 죽어있었고 고독과 쓸쓸함만이 온 집안에 먼지처럼 뒤덮여있었다.

 

   아나킨이 집에 들어오는 날은 점점 더 적어졌다. 오비완은 굳게 닫혀있던 아나킨의 방문을 조심스레 열고 침대에 걸터앉아 주위를 둘러보았다. 이 공간만큼은 모든 것이 그대로였다. 그가 없어도 그의 향은 여전히 오비완과 그곳에 함께 존재했고 옷장 앞에서 옷깃을 정리해주며 나누던 대화, 책상 위에 쌓여만 가는 컵 때문에 오가던 다툼, 침대에 나란히 누워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저 서로의 눈만 바라보던 수많은 밤마저 어제 일처럼 생생했고 우리가 더는 사랑하지 않는다는 사실조차 느낄 수 없게끔 만들었다. 그의 방은 여전히 오비완을 반겼다. 그 사실이 그를 더 버틸 수 없게 만들었다. 망가질 대로 망가진 관계 속에서 홀로 남겨져 체념하곤 묵묵히 버텨보았지만 결국 무너지고 말았다. 오비완은 과거 자신의 모습을 떠올렸다. 제다이의 권위는 사라졌어도 여전히 품위를 잃지 않으며 살아왔고 또한 그것을 잃는다는 건 곧 자신을 죽이는 것과 같다고 여기며 살아왔는데. 그의 모습에서 이제 품위 따윈 보이지 않게 되었다. 바닥에 주저앉아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이며 흘러내리는 눈물을 막지 못한 채 주먹을 꽉 쥐었다.

 

   제발 이곳에 날 혼자 버려두지 마.

 

   허공을 메우는 작은 울림은 더 큰 파동을 일으킬 뿐이었다.

 

   비척거리는 몸을 이끌고 소파에 몸을 던졌다. 자신의 방도 더는 반갑지 않았고 혼자 남겨진 이곳을 이젠 집이라 칭할 수도 없었다. 술이라도 마시면 이런 감정을 느끼지 않고 잠이 들 수 있을까 온갖 생각이 난무하는 순간, 현관문이 덜컥 열리는 소리에 감은 눈을 지그시 떴다. 익숙하고 귀에 익은 소리였다. 오비완은 자신을 제외한 누군가의 소음이 그리웠고 반가웠으며 간절했으나 그의 발걸음은 결국 저를 향하지 않을 거란 걸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왔니.”

 

   “…….”

 

   아나킨은 고개를 돌려 그가 있는 곳을 가만히 응시했다. 평소대로라면 어떠한 대화도 눈짓도 없이 서로를 무시한 채 지나갔겠지만 오비완이 그를 불렀다. 처절하게 체념만 하던 그가 다 끊어져 가는 줄을 간신히 붙잡고 억지로 버텨보려는 것처럼.

 

   “늦었구나.”

 

   아나킨은 오비완의 말을 무시한 채 벽에 몸을 기대 그를 바라봤다. 그런 그의 모습에도 쉽게 무시하지 못하는 저 자신이 더욱더 한심하게 느껴져 그만 자리에서 일어났다.

 

   “…먼저 들어가마.”

 

   오비완은 그를 지나쳐 방문을 열고 들어가려다 발걸음을 멈춰 세웠다. 그에게서 낯선 향수 냄새가 풍겼다. 짙게 밴 향 내음을 맡은 순간 저절로 눈동자가 덜컹거렸고 심장이 쿵 하고 내려앉는 듯했다. 그가 전엔 일절 피우지 않던 담배 냄새를 진하게 풍기며 늦은 새벽마다 집에 들어와 잠만 자고 나갔던 밤들이 떠올랐고 그때마다 그래도 이렇게까지 모질지는 못할 거라 애써 자위하며 하루하루를 버텼으나 이젠 어찌할 바를 몰랐다. 분노인가, 슬픔인가. 무엇이 저를 괴롭히는지 알 수 없었다. 그를 지나치지도 방 안에 자신을 숨겨두지도 못한 채 오비완은 입술을 깨물며 한동안 움직이지 못했다. 가쁜 숨을 들이마시며 결심한 듯 뒤돌아 그를 바라보자 아나킨은 무슨 말을 꺼낼지 다 알고 있단 말투로 오비완을 대했다.

 

   “듣고 싶지 않을 텐데.”

 

   괜찮겠어요? 아나킨은 비죽거리며 입꼬리를 올리다가 금세 싸늘한 표정을 내보이곤 자신의 방으로 들어갔다. 오비완은 자신의 옆을 쌩하니 지나치는 그를 막아 세우지 못했다.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 오비완의 시선은 굳게 닫힌 아나킨의 방을 향해 있었다. 녀석도 느끼지 않았을까. 달라진 게 없는 그 방에서 너도 나처럼 그때의 기억에 조금이라도 마음이 흔들리진 않을까.

   오비완은 발걸음을 돌려 그의 방 앞으로 살며시 다가가 바닥에 주저앉아 방문에 머리를 기댄 채 말을 걸었다.

 

   “아나킨.”

 

   “…….”

 

   대답을 원한 것은 아니었다. 그가 말을 이었다.

 

   “네가 또 아무 말 없이 가버리면 난 외로워지겠지. 오늘도 이곳에서 얼마나 울었는지 너는 모를 거야.”

 

   “…….”

 

   그는 울먹이는 목소리를 억지로 참아내며 애걸하듯 말했다.

 

   “다른 사람을 만나도 좋아. 그것까지 내가 뭐라 하진 않으마.”

 

   다만, 나를 천천히 버려줄 순 없겠니.

 

   넌 머지않아 내게서 떠나갈 테니. 난 그게 너무 두렵단다. 끝내 돌아오지 않는 대답에 오비완은 다시 등을 돌려 문에 기댄 채 고개를 숙이며 시간이 멈춰 오늘 밤이 지나가지 않기를 간절히 바랐다. 항상 길기만 했던 지금, 이 순간이 오늘만큼은 네가 곁에 있어 한없이 짧기만 할 테니까.

 

   “네가 떠나야만 한다면, 부디 나를 천천히 버려줬으면 해.”

 

   무너져가는 것을 막아 세울 방법은 없었으나 어떻게든 붙잡아야 할 것 같았다. 설령 그것이 비참해지는 일이라 하더라도 그는 계속해서 할 수밖에 없었다. 이유는 단 한 가지뿐이었다.

 

   “내가 너를 많이 사랑하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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