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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weet Song - Blu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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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원의 소리로 우는 새 

 스 텡   @obsssdwith  

   나는 열다섯 살이었어요.

   스스로도 열다섯 살이면 어른이라고 생각했죠. 내가 열 살 때부터 우리 엄마한테 관심을 갖고 접근했던 갱단 보스가 ‘열다섯 살이면 다 컸지. 이제 네가 엄마를 지켜줘야지?’ 라고 했을 때 나는 진심으로 ‘그래야죠.’ 라고 했어요.

   엄마는 토요일 저녁 시간에 하는 토크쇼를 한 주도 빠지지 않고 챙겨봤어요. 우리 같은 이민자 출신 여자가 사회자였죠. 자기가 진행하는 쇼의 첫 번째 게스트이기도 했고요. 그 쇼에는 매주 새로운 성공한 사람들이 게스트로 나왔어요. 나중에 알았지만, 그들의 공통점은 각자 나름대로 바닥에서부터 그 자리까지 올라왔다는 거였어요. 자기 삶을 그런 식으로 설명해내는 사람만 출연할 수 있다나요. 엄마는 그 TV쇼를 매주 챙겨보고, 기대하던 출연자의 방송분은 비디오 녹화도 했어요. 좀 커서 이 TV쇼를 왜 그렇게 좋아하느냐고 물었더니, 내가 어릴 때 엄마 옆에서 같이 보다가 ‘나도 언젠가 저기 나올 거야.’ 라고 했대요. 그런데 기억이 없어요. 모르죠, 그 어릴 때는 내가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아도 컴퓨터를 조립하고 C언어를 독해하고 발명품을 구상해내는 천재니까, 어른이 되면 당연히 그 쇼에 초청 받을 거라고 생각했는지. 현실은 전쟁 전에 지은 건물을 페인트칠도 하지 않고 쓰는 것 같은 학교에서 독립 전쟁의 역사를 배우고 쪽지 시험이나 봐야 했는데. 다른 애들 괴롭히고 시비 거는 게 일과인 애들 무시해가면서. 하루는 내가 더는 못 참고 그 애들과 학교에서 어떻게 치고받았는지 들은 갱단 두목이 내 어깨를 두드려주며 그랬어요. ‘남자구나!’

   엄마가 아닌 다른 어른에게서 칭찬을 듣는 게 얼마나 기분이 좋던지! 밤마다 갱들이 영역 다툼을 하는 총소리가 났어요. 잊을 만하면 누가 죽었다는 소식이 들려왔죠. 매일 경찰차가 돌아다니고 사람이 체포됐어요. 날이 밝으면, 그 갱단 조직원들이 어젯밤에 사람을 뒤지게 팼다느니 어쨌다느니 하는 소문이 하루가 지나기 전에 온 동네에 퍼졌죠. 그런 걸 알면서도 그에게서 칭찬 듣는 게 좋았어요. 사람들은 그 살인자, 범죄자들을 매일 욕하는데 말이에요. 그래서 한번은 그에게 ‘항상 나쁜 사람들만 처리하나요?’ 라고 물었어요. 그는 ‘더 크면 알게 될 거야.’ 라고 했어요. 사실 아무래도 상관없었어요. 그의 말대로 내가 어른이 되어서 힘이 생기기만 한다면요. 하지만 그놈이 엄마를 괴롭힐 걸 알았다면, 그 칭찬을 그저 기분 좋아서 듣고 있지는 않았겠죠. 사람들 말로는 그가 우리 엄마한테 생활에 보태 쓰라고 꼬박꼬박 돈을 줬대요. 엄마는 돈을 받기를 싫어했고요. 엄마는 매번 거절하려고 했지만, 실패했어요.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아무리 애라도, 정말로 ‘아무것도’ 모르지는 않아요. 나 때문에 엄마가 그를 ‘거절하지 못한다'고 이웃들이 쑥덕거리는 소리를 들은 뒤로 나는 그와 마주치지 않으려고 피해 다녔어요. 엄마는 ‘엄마가 그 사람한테 더 이상 우리에게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고 했어. 우리는 그로부터 최대한 멀어져야 해.’ 라고 했죠. 하루는 엄마한테 그랬어요. ‘나 싸게 총을 조립해줄 수 있어요. 필요해요?’ 엄마는 믿을 수 없다는 얼굴로 나를 쳐다보더니, 필요 없다고 했어요. 우리 같은 사람들은 총을 가져도 아무도 우리를 무서워하지 않을 거라고요.

   어느 날 그가 뒤에서 나를 불렀어요. 평소와 같이 피해서 가려고 했는데, ‘오랜만이다. 많이 컸구나. 네가 몇 살이지?’ 나는 열다섯 살이었어요.……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엄마가 돌아가셨어요. 안정적인 수입은 그 동네 사는 사람들에게는 꿈같은 이야기였고, 엄마는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면서 계속 새로운 일을 구하고 또 하루에 여러 일을 하며 무리해서 전보다 심장이 더 안 좋아졌는데, 한밤중에 그렇게 갑자기. 장례식에서 사람들이 하는 말을 들었어요. 어느 동네든 발 없는 말이 돌아다니죠.……엄마가 돌아가신 그날 밤에, 그 갱단 보스가 엄마를 찾아 집 앞까지 왔고 한참 말다툼을 했다고.

   그는 무슨 생각이었는지 장례식이 끝난 뒤에 나를 정식으로 자기 조직에 넣어줬어요. 그사이에 나는 총을 조립했어요. 폭발물도 만들었고요, 엄마는 내가 폭탄도 제조할 줄 안다는 건 꿈에도 모르고 돌아가셨어요. 불행 중 다행이죠, 안 그래요? 그리고 계획한 날이 되어, 정해둔 저녁 시각이 되면, 그가 있는 곳으로 가서 총을 겨누고 그 입에서 진실을 듣고 머리통을 날려버릴 상상을 하니 차분할 수가 없었죠. 아마 나도 살아나오지 못할 테니까. 삶의 마지막 날에 뭘 해야 할까, 책장에 가득 꽂혀있는, 엄마가 나중에 나 보라고 녹화해뒀던 비디오가 눈에 들어왔어요. 내가 저 TV쇼에 나갈 일은 영영 없겠지만 시간을 때우기엔 적당해 보였어요. 엄마의 수고를 헛되이 하지 않는 길이기도 하고요. 눈에 띄는 것을 하나씩 꺼내서 보다가, 넘기고, 그렇게 몇 번째 비디오테이프였는지, 재생하자마자 당신 노래가 나왔어요. 그때 나는 악기 소리도 구분이 안 됐고, 기타 리프에 귀가 사로잡힌다는 게 뭔지도 몰랐는데.

 

   모를 수 없는 것을 알게 돼 사랑은 그런 거야

   모른 척 해야 하는 것을 부는 거야 내 노래는 그래

   …

   얼굴에 기어오르는 희미한 빛 가운데 너를 볼 때

   말하지 않아도 알았지 그리고 우리는 영원히 침묵했어……

 

   건반을 두드리는 것 같은 일렉트로닉기타 선율 위로 끌듯이 노래를 부르는 당신 목소리가 나를 홀렸어요. 나는, 엄마한테는 좀 미안한 말이지만, 태어나서 처음으로 그 TV쇼를 집중해서 본 것 같아요. 화면이 바뀌었고, 당신이 등장했어요. 나중에 다시 보니까 그때 당신은 정말 새파란 어린애였더라고요. 그 방송에 나올 때는 스물다섯 살이었으니까, 수염도 없었고요.

사회자가 그 노래에 관해 물었죠. ‘이 노래가 누구 이야기인지를 두고 많은 말이 있는데요, 오비완. 이 노래는 누구 이야기인가요? 어떤 배경에서 만들어졌나요?’

   당신이 답했어요. ‘서로 사랑하지만 비밀이 있고 비밀이 있음에도 그만둘 수 없는 사람들의 이야기요. 그러니까 비밀이 사랑을 이기지 못하지만, 사랑도 비밀을 처치하지 못하는, 아주 팽팽한 긴장이에요. 사랑도 그렇고 산다는 것이 항상 그렇게 최고와 최악 가운데서 외줄 타기를 하는 것 같지요.’

   그리고 당신은 그 사연을 이야기했어요. ‘노래를 만들기 몇 주 전에, 나를 키워주고 음악을 할 수 있게 지원해준 후견인이 갑자기 세상을 떠났을 때 나는 열아홉 살이었어요. 아이디어 자체는 오래됐어요. 그런데 바로 그때 나는 지금이 내 아이디어를 완성시킬 마지막 기회라고 느꼈어요. 혼자 최대한 노래의 형태를 잡아 테이프에 녹음해서 밴드 친구들에게 가져갔고, 그렇게 완성된 거예요.’

   사회자가 다시 물었어요. ‘그 노래가 당신과 당신의 후견인의 이야기라는 말이 있는데요, 정말 그런가요?’

   당신은 차분하게 답했어요.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은 내가 어릴 때부터 ‘발랑 까졌다’고, 나보다 훨씬 연상인 사람들에게만 끌린다고 믿고 싶어 하죠. 게다가 그 사람을 미성년자와 사랑이나 나누는 파렴치한으로 멋대로 상상해요. 터무니없는 모욕이죠. 나는 그때 단지, ‘이제부터 어떻게 해야 하지?' 라고 생각했어요. ‘빌어먹을, 어떻게 살아가야 하지?' 나는 죽고 싶다고 생각한 적이 없어요. 죽어야 한다면 죽을 거라고 생각했을 뿐이죠. 그런데 그 사람이 죽어야 했을까? 나는 처음으로 죽음의 공정함을 두고 의심했어요. 공평하게 모두에게 찾아오지만, 아무 집 초인종이나 누르고 도망치는 아이들의 악의에 찬 장난 같을 때가 있어요. 나는 나를 향한 비난을 당연한 것이라고 받아들인 적도 없고 신경 쓸 가치가 있다고 여긴 적도 없지만 그때는 갑자기, 나를 향한 그 모든 악의가 진작 나를 꺾든지 죽여야 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 사람은 항상 나한테 그랬어요. ‘너 정도 재능을 가진 사람은 많다.’ 그 말 덕분이라고 해야 할지 나는 자만했던 적이 없지만 스스로를 덜 떨어지게 여겼던 적도 없어요. 그럴 여유가 없었거든요. 그런데 그 사람이 떠나고 나니까 정말로,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겠더군요.’

   사회자가 물었어요. ‘그때가 당신 삶에서 가장 힘든 시기였나요?’

   당신은 답했어요. ‘가장 혼란스러운 시기였던 건 맞는 것 같아요. 확실한 줄 알았던 것들이 갑자기 전부 낯설게 느껴졌어요. 전까지 했던 음악과 작업, 알고 지내던 사람들, 나의 신념, 생각, 감정, 내가 내 생각을 말로 표현하는 것도 위화감이 들었죠. 그래서 그런 가사를 썼어요. 사랑한다면 모를 수 없다고, 일부러 더 아는 척, 확신하는 척 했어요. ‘모른 척 해야 하는 것을 부는 거야, 내 노래는 그래―그러니까 다 불어버릴 거야, 지금 다 불어버릴 거라고!’ 모든 것이 헷갈리고 모든 것을 의심하고 회의하는 가운데서 남은 확신을 긁어모아서요. 한동안은 앞으로 내가 멀쩡한 정신으로 살 수 있을 거라는 확신도 없었어요. 그러던 어느 날 무대에서 노래를 부르는데, 갑자기 내가 이전의 어느 때보다 멀쩡하고 맑은 정신이라는 사실을 깨달았어요. 잘도 살아남은 거예요. 그러니 좀 더 살게 될 거고요.’

   심장이 멎는 기분이었어요. 그때 당신의 노래가, 당신의 그 이야기가 내 귀에 들려온 건 우연이 아니었어요. 끝까지 보고 나니 오후 다섯 시 정도였어요. 조금 이른 저녁을 먹었죠, 그리고 조립한 총이랑, 폭발물을 전부 다시 분해했어요. 얼마 후에 다른 동네로 이사를 하고 아르바이트를 하고 돈을 모아서, 처음 산 당신의 앨범은 물론 그 노래의 싱글 컷과, 그 노래가 포함된 정규 앨범이었어요, 그리고 처음 당신의 공연에 가서 무대에 있는 당신을 봤을 때, 나는 열여섯 살이었어요. 공연이 끝나고, 당신과 자려고 공연장 밖에서 기다리고 있는, 대다수가 여자인 팬들 사이에 껴 서있는데 누가 나를 보고 소리쳤어요. ‘씨발 저건 완전 어린애잖아!’ 시간이 지나 당신이 나왔고, 나를 한번 쳐다봤어요. 그날은 그러고 끝이었죠. 하긴 괜히 눈길을 줬다가 누가 봐도 미성년자인 애와도 얼마든지 떡칠 생각이 있는 ‘파렴치한’이 되면 큰일이잖아요. 당신이 무리와 사라지고, 나도 따라 나가려고 하는데 옆에서 누가 나한테 ‘집에나 가라 꼬마야.’ 라더라고요.

그 후로도 나는 평소 번 돈을 몽땅 쏟아 부어가며 당신 투어를 따라다녔고, 성인이 된 첫 해에 공연이 끝나서 나가는 당신을 향해 ‘나 이제 생일 지났어요!’ 라고 외쳤죠. 당신이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봤어요. 그리고 크게 빙긋이 웃었고……그 다음 공연에서 당신은 다음 노래를 부르기 전에 관객을 향해, ‘생일이 지난 사람이든, 아직 남은 사람이든 여기 있는 모두의 탄생과 삶을 축하해.’ 라고 했죠. 그날 당신이 공연장을 나오는 길에 내 앞에 멈춰서 내 이름을 물었어요.

 

   “……그리고 당신의 호텔 방으로 갔고요.”

 

   십년도 더 지난 사연을 들으며 오비완은 조금 전 아나킨에게 이야기해보라고 허락한 것을 살짝 후회했다. 스타와 자는 것을 목표로 하는 그루피들이 다 그렇지만 아나킨도 제정신이 아니었다. 정확히는 그를 제정신인 보통 사람으로 대할 수 없었다. 다만 다른 팬들이나 엔터테인먼트 업계의 누구와도 관계를 만들기 위해 애쓰지 않는다는 점에서 아나킨은 다른 그루피들과 달랐다. 아니, 애쓰기는커녕 최소한의 눈치조차 안 봤다. 실랑이를 벌이다가 감정이 격해지면 상대를 잡고 들어 올려서 짐짝처럼 던져버리는 바람에 이 바닥에서 미친놈으로 낙인찍힌 인간이었다. 원래부터 키가 컸는데 갈수록 어깨가 벌어지고 덩치가 커져서 더욱 위협적이었다. 사실인지는 확인이 되지 않았으나 누구는 목을 졸렸다고도 했다. 적지 않은 사람들이 스카이워커를―처음 잤던 밤에 오비완이 ‘이름 특이하네.’ 라고 했더니 아나킨이 ‘어머니 성이에요.’ 라고 했었다. 다들 그 이름이 특이했는지 아나킨이라는 이름은 몰라도 스카이워커라고 하면 알았다― 죽이고 싶다며 이를 갈았다. 더 많은 사람들은 아나킨의 이름을 들으면 치를 떨었고 또 어떤 사람들은 차라리 저렇게 자기 식대로 막나가는 게 위선 떨거나 정치하는 것보다는 낫다며 추켜세우기도 했다. 그러나 모두 입을 모아 ‘케노비가 결국 버리면 끝이다’라고 쑥덕거렸다. 하긴 오비완 그가 아나킨과 첫 관계를 가진 바로 다음해에 거의 월드 투어 내내 데리고 다닌 그런 사이가 아니었더라면 절대 호의적이지 않은 인간들 틈에서 아나킨이 어떻게 되었을지는 모를 일이다.

   아, 다른 그루피들과 아나킨의 가장 중요한 차이점이 하나 더 있다. 아나킨은 태어나기를 고전 명화 속 천사처럼 생겼고, 몸이 좋고, 그리고 음, 훌륭한 도구를 가졌다. 처음부터 기술이 좋지는 않았다. 처음 잤던 밤에 아나킨이 먼저 가서 기다리고 있던 호텔 방으로 들어온 오비완이 아나킨을 마주하고 처음 한 말은 ‘너 게이 아닌 것 같은데?’였다. 오비완은 데뷔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아직 미성년자일 때부터 바이섹슈얼로 알려졌다. 그 다음 한 말은 이랬다. ‘혹시 남자는 내가 처음이니? 아니다 대답하지 마.’ 다들 오비완이 왜 그런 놈과 관계를 유지하는지 의아해 했지만 남들에게 말을 못 해서 그렇지 오비완도 아나킨을 그냥 버릴 이유가 없었다. 어떻게 취향에 맞게 가르쳐놨는데. 하여튼 아나킨은 고분고분한 맛은 없었다. 환장할 정도로 제멋대로였으며, 오비완 그에게는 말 한 마디 없이 사고를 치고 다니며 그 소식을 남들에게서 전해 듣게는 해도 뭔가 다른 목적이 있어서 오비완을 귀찮게 하는 일은 없었다. 그러면서 오비완이 필요로 할 때는 항상 곁에 있으며 도움을 주었다. 그래서 언제부터인가 아나킨이 갑자기 모습을 감춰 5년 정도 코빼기도 구경할 수 없었던 시기에 사람들은 일어날 일이 이제야 일어났다고 여겼다. 아니면, 진짜로 죽었거나.

   아나킨이 사라졌던 시기는 밴드 ‘와블러(Warbler)'의 휴식기와, 그 밴드 보컬이자 ‘작곡자’였던 오비완의 휴식기와도 겹쳤다. 밴드 이름의 뜻인 ‘지저귀는 새―노래하는 사람이라는 뜻도 있다―’는 오비완의 별명이기도 했다. 그 시기에 오비완은 한 귀족 출신 의원과 스캔들이 났고, 나이가 들면서 얌전해진 이미지로 변신하고 그 일환으로 수염을 길렀다. 많은 팬들은 윗입술을 덮고 코 아래에서 턱까지 이어지는 수염이 얼굴을 가린다며 아쉬워했다. 오비완이 지금 자기가 만나는 사람도 그런 말을 한다고 인터뷰해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자기들 관계를 공인하지 않았지만 부정도 하지 않았던 그 귀족 출신 의원 레이디와 록스타 쌍은, 함께 차에서 내리는 파파라치 사진이 세간에 화제가 된지 얼마 지나지 않아 한 연예 일간지의 집중적인 타깃이 되었다. 여러 달 동안 이어진 맹공격의 선두에는 잠적한 사이에 관련 학위를 취득하고 찌라시 기자로 전직한 아나킨 스카이워커가 있었다. 대중에게 ‘적어도 부정적이지는 않은’ 인상을 주기에 이런 ‘약간 어그로스러운 스캔들’도 나쁘지 않겠다고 판단해서 위험을 감수하고 오비완과의 만남을 이어갔던 의원은, 오비완이 그 의원이 속한 정당의 정책 노선과 정반대의 정치적 성향을 가졌다는 굉장히 설득력 있고 자극적인 추측성 분석에, 그동안 오비완의 여성, 남성 가리지 않은 편력의 역사에 관한 기사가 연달아 나며 여론몰이를 하자 결국 오비완과의 관계를 유지할 명분을 잃었다. 그 ‘실연’으로부터 오래지 않아 오비완 케노비는 첫 솔로 앨범을 냈다. 언뜻언뜻 ‘와블러’ 시절의 음악을 연상하게 하는 곡들은 오비완의 새로운 이미지와도 어울리는 어쿠스틱한 멜로디를 다수 포함하고 있었다. ‘지저귀는 새’의 휴식기의 종료를 알리는 첫 어쿠스틱 라이브 투어 기사에 일간지는 이런 제목을 달았다. ‘광팬들의 사랑이 승리를 거뒀다’

   그 ‘광팬’에 아나킨도 포함된다고 생각하면 가증스럽기 짝이 없었다. 오비완은 이 나라와는 달리 아주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고 일반인의 총기 소지가 금지된 국가 출신이다. 그런 배경 때문만은 아니지만 오비완은 총을 가져본 적이 없었다. 가져볼 생각도 한 적 없다. 아무튼 오비완은 뒤늦게, 당시 아나킨을 죽이고 싶어 했던 인간들이 어떤 심정이었을지 알 것도 같았다. 평소 사고 칠 때도 그러더니 죽었는지 살았는지도 모르게 자취를 감출 때조차 아나킨은 한 마디 말이 없었다. 그래서 오비완은 이번에야말로 아나킨에게 정말로 무슨 일이 생겼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었다. 결코 유쾌한 기분이 아니었다. 그러더니 이런 식으로 다시 나타나다니.

   오비완은 여전히 ‘연주자’가 아니었기 때문에 무대 위에서 손에 아무것도 들지 않았다. 노래를 부르는 중에 그는 으레 한 손으로는 스탠드에 고정된 마이크를 잡고 다른 손으로는 손목 아래까지 내려오는 소매를 네 손가락으로 쥐고 있었다. 오랜 버릇이었다. 그래서 옷이 긴팔이 아닐 때는 빈손을 쥐었다 폈다 하며 꼼지락거렸다. 솔로 데뷔 후 첫 어쿠스틱 라이브 투어가 끝날 때까지 오비완은 모든 공연에 나타난 아나킨을 무시했다. 그리고 오늘이 투어의 마지막 무대였다. 아나킨은 오비완의 개인 연락처를 알고 있었다. 오래 전 과거에 오비완이 줬기 때문이다. ‘영원히 피할 수 없다는 거 알잖아요.’ 여러 해 만에 아나킨으로부터 온 텍스트를 한참 들여다보며 한쪽 손을 쥐었다 폈다 하던 오비완은 그가 묵고 있는 호텔 주소와 방 번호를 적어 답을 보냈다. 오비완이 방에 들어가자 아나킨은 처음 잤던 밤처럼 소파에 앉아서 기다리고 있었다. 오비완은 겉옷을 벗어 걸어두고 아나킨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바로 옆에 붙어 앉았던 그날 밤과는 달리 아나킨이 앉아 있는 긴 소파에 90도 방향으로 붙어있는 일인용 소파에 몸을 파묻고 아나킨을 쳐다본다. 한참 말없이 보고 있다가, ‘우리가 어쩌다가 여기까지 왔지?’ 라고 했다. 그러자 아나킨이 웃지도 않고, ‘긴 이야기죠.’ 라고 대꾸했다. 그래서 오비완은 대수롭지 않은 듯이 말했다. ‘이야기해봐.’

 

   “그 갱단에서는 어떻게 빠져나온 거야?”

 

   왜 갑자기 사라져서 몇 년 동안 나타나지 않았는지, 어쩌다가 마치 오비완의 그 스캔들을 노리기라도 한 것처럼 그 시점에 찌라시 기자가 되어 다시 나타났는지, 알고 싶은 것은 그뿐이었지만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가는 아나킨 특유의 대충 얼버무리는 말이나 듣다가 떡이나 치게 될 것이므로 오비완은 인내하기로 했다. 하여튼 겉을 번지르르하게 하는 데만 치중하는 인간들이 하는 이야기는 곧이곧대로 믿을 수가 없다. 자기도 자기 거짓말에 속아서 그게 진실인지 아닌지 분간도 안 되지는 않나 모르겠다. 아무튼 십년도 더 된 일이라 그 TV쇼에 나가서 뭐라고 했는지 거의 기억나지 않지만 그 방송분을 통째로 외운 것 같은 아나킨이 하는 말을 들어보면 당시 오비완 그가 했던 생각이고 했을 법한 말이긴 했다. 확인해보고 싶지는 않지만. 한편 아나킨은 그 질문을 듣고, 당연하게도 오비완이 자기 이야기의 사실 여부를 의심할 것을 알았다. 그렇다고 변명할 것도 아니지만.

 

   “당신 방송을 보고 나도 ‘좀 더 살게 될 거’라는 걸 알게 된 날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서 총 같은 거 없이 그 갱단 보스에게 갔어요. 그리고 어릴 때부터 들어왔던, 우리 엄마와 관련된 소문이 사실이었느냐고 물었죠. 내가 그랬어요. ‘당신이 죽였어.’ 부정하지 않더라고요. 그리고 보다시피, 멀쩡하게 살아서 내 발로 걸어 나왔어요. 주변에 서있던 놈들한테 몇 대 얻어터지긴 했지만.”

   “총 같은 건 필요 없었네.”

   “필요 없었죠. 살인을 할 게 아니라면.”

   “그리고? 내가 너 투어에 데리고 다닐 때인가. 네가 하루가 멀다 하고 시비 걸고 싸우고 사람 쳐서 당시에 나한테 네 소식 들려주는 재미로 사는 것 같은 사람들이 꽤 있었거든.”

   “당신은 언제부터 나를 좋아했어요?”

 

   맥락 없이 튀어나온 질문에도 오비완은 대놓고 비웃지 못했다.

 

   “무슨 말이 듣고 싶어서 이래?”

   “말했잖아요, 내가 이제 생일 지났다고 외쳤더니 당신이 나를 보고 웃어줬죠. 그리고 무대 위에서, 한 사람에게 하는 말이 아닌 척 하고 생일 축하한다고도 했고요. 그리고 그 후로 몇 달 동안 거의 내가 당신을 보러 갈 때마다 한 번씩은 꼭 섹스를 했고.”

   “그래 알다시피 내가 얼굴에 환장해서.”

   “그리고 나를 비행기에, 투어 버스에 태워서 투어 내내 데리고 다녔죠. 나한테, ‘절대 믿을 수 없는 게 너 같은 애들이겠지.’ 같은 말을 하면서도 그날그날 당신 마음속에 있는 이야기를 하고, 나는 그 시간을 사랑했어요. 어쩌면 당신과 침대 위에서 보내는 시간 이상으로요. 그리고 나는 당신을 화나게 하거나 성가시게 하는 인간들을 틈나는 대로 찾아가서 엿 먹였어요. 당신처럼 듣는 사람 바보 만들고 머리꼭지를 돌아버리게 하는 언변은 없어도, 대놓고 엿 먹이는 건 잘하거든요, 어릴 때부터 해온 게 있어서. 그런 인간들은 하나같이 관심에 굶주려 있어서 찾기도 어렵지 않고, 나를 보면 숨기지 못하고 아는 척을 해요. ‘아 케노비가 있는 곳 근처에 항상 있다는 그 미친 애!’ 그러면 가까이 앉아서, 그쪽 이야기를 즐겁게 받아주는 척 하다가, 한참 분위기 좋을 때 술이 채워져 있는 그쪽 잔 안에 담뱃재를 떨거나 꽁초를 버리거나, 너무 취해서 그런 것처럼 잔을 그쪽 가랑이 쪽으로 기울여 쏟아버리거나, 당구대나 다트가 있으면 시비를 거는 방법은 더욱 많죠. 나중에 가서는 어김없이 서로를 향해 소리를 질러대거나, 물건이 날아다니거나, 주먹질이 오가고 그래요.”

   “네가 던져버린 게 물건만이 아닐 텐데?”

   “아, 몸싸움하다가 그런 건 항상 상황을 끝내려고 그런 거였어요. 당신은 직접 본 적 없잖아요.”

   “있어.”

   “있다고요? 언제?”

   “내가 건물을 나와서 이동 중이었는데 그것도 대낮에, 시끌시끌해서 봤더니 네가 상대 멱살을 잡아서 들어 올리더니 그대로 길가에 주차된 자동차 보닛 위로 내동댕이치던데.”

 

   그 말에 아나킨이 귀가 빨개져서 제 목덜미를 만지작거린다.

 

   “당신이 거기 있는 줄 몰랐나 봐요. 당신 앞에서는 절대 그렇게 안 하는데……”

   “새삼스럽구나. 네가 제정신 아닌 애인 거 이미 알았단다.”

   “그러니까 그런 미친 애를 왜 그렇게 가까이했어요. 하루 이틀도 아니고.”

   “글쎄다. 아무리 난놈인 미친 애라도 도저히 가까이에 둘 수 없거나 가까이해서 좋을 게 없으면 진즉에 멀어졌겠지.”

 

   사실 그때부터 짐작 가는 게 있었지만 정말로 아나킨이 제 나름대로 오비완 그를 위한답시고 소란을 일으키고 다녔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오비완은, 솔직히 꼴렸다. 하지만 들어야 할 이야기가 아직 안 나왔다. 한쪽 소매 끝을 쥔 네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며 오비완이 돌려 말한 답에 아나킨이 그냥 넘어가준다는 표정을 지었다. 오비완이 자기 소속사에 이야기해 반-공식적으로 아나킨을 투어에 데리고 다닌 것은 그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그때도 그 후로도, 오비완은 많은 부분 아나킨을 섹스파트너라기보다 나이 차이는 나도 마음이 통하는 친구처럼 대했다. 아무도 안 믿을 이야기지만 아나킨은 그렇게 느꼈다. 어떨 때 오비완은 젊은 애를 이해하지 못하고 가르치려고 드는 꼰대 선생 같았고, 어떨 때는 초보 부모 같았으며, 또 어떨 때는 둘만의 추억과 비밀을 간직한 동네 친구 같았다. 그러나 아나킨은 자신이 오비완에게 특별한 사람이 된 것처럼 굴었다가는 당장 오비완이 그를 ‘만사를 과장하고 왜곡해서 보는’, ‘제정신이 아닌’ 놈이라고 매도할 것을 알았기 때문에, 그의 기준에서 오비완이 다가온다 싶으면 오히려 적당히 거리를 두었다. 그러다 보니 아나킨의 안에서 피해의식에서 비롯된 증오가 애정의 틈새를 비집고 자랐고, 언제 바뀔지 모르는 상황으로 인한 불안은 그 공격적인 감정을 더욱 부추겼다. 결국 아나킨 안의 그 폭탄은 오비완이 휴식기를 가져야겠다고 아나킨에게 암시하면서 첫 폭발을 일으켰다. 오비완은 아나킨이 자신에게 그렇게 화가 나서 견디지를 못하는 것을 아마 그때 처음 봤을 것이다.

 

   “하루는 밤늦게까지 술을 마시고 취해서 길을 가는데 누가 저 앞에 가로등 불빛도 없는 어둠 속에서 길을 막고 서있는 거예요. 인도가 좁고 길가에 차가 주차되어 있어서 피해갈 수가 없어서, 하도 어두워서 이목구비의 위치나 간신히 구분될 정도로 가까워졌을 때 그가 입을 열었어요. ‘스카이워커지?’ 그가 손에 쥔 것을 이렇게―내 가슴을 향해 들었어요. 사방이 컴컴한 가운데 장전하는 소리가 났어요. 당신이 당분간 활동 계획이 없다고 언론에 밝혔을 때였죠. 나는 천천히 양손을 들었어요. ‘왜 이래?’ 내가 묻자 어떻게 생겼는지 거의 보이지도 않는 놈이 되물었어요. ‘너는 오비완과 무슨 사이지?’ 그러더니 다시 물었어요. ‘오비완이 너를 사랑하나?’ 나는 대꾸했어요. ‘나도 알고 싶은데.’ 그가 다시 물었어요. ‘너는 그를 사랑하나?’ 나는, 잠시 생각했어요. 오래 끌 수가 없었어요. 저 미친놈이 언제 비위 틀려서 갑자기 방아쇠를 당길지 모르니까요. 나는 이야기를 시작했어요. ‘TV쇼 녹화 비디오에서 그를 처음 봤을 때, 그의 노래를 처음 들었을 때 나는 열다섯 살이었고, 몇 시간 후면 엄마를 죽인 놈 대가리에 총알을 박아주려고 총을 곁에 두고 있었어.……’ 듣는 상대가 인내심이 부족할 것을 고려해서 당연히 훨씬 요약해서 말했죠. ‘……그가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내가 어떻게 알겠어? 마찬가지로 그를 생각하는 내 마음을 그는 상상도 못하겠지. 하지만 그의 노래에서도 그러잖아, 모를 수 없는 것을 알게 돼. 그리고 말하지 않아도 알게 되지……’ 그때의 나로서는 다행스럽게도, 그 자식도 당신 팬이었는지 방심하는 것이 느껴졌고, 내가 바로 그의 손목을 붙잡아 꺾으며 팔을 밀어 제압하자 총이 허공으로 발사됐어요. 그리고 내 몸으로 놈을 덮쳐 눌러 겨우 바닥에 쓰러뜨리고……아마 죽지는 않았을 거예요. 정말로 사람을 때려죽였다면 내가 지금 이렇게 무사할 리가 없으니까. 놈의 손에서 떨어진 총을 인도 밖으로 걷어차 떨어뜨려놓고 경찰차 사이렌 소리가 들리는 쪽 반대 방향으로 갔죠. 그리고 그대로 몇 년 간 몸을 피해 있었어요.”

 

   느리게, 깊이 숨을 들이마시고 내쉬며 오비완은 자신의 가슴을 향하고 있는 총구를 쳐다봤다. 이야기 속 남자가 총을 겨누는 제스처를 취하며 잠시 시야 밖으로 나갔다가 다시 올라온 아나킨의 손에는 진짜 총이 쥐여 있었다. 오비완이 노려보는 시선을 똑바로 마주하고 아나킨이 계속 이야기했다.

 

   “아, 혹시 내가 총을 조립할 줄 안다는 이야기도 안 믿었어요? 구글에 검색하면 온갖 도면이 다 있는데, 굉장한 시대에요, 안 그래요?”

   “미친놈.”

   “알아요. 그 레이디에게 정말로 악감정 같은 거 없어요. 처음 파파라치 사진이 떴을 때부터 아름답고, 당신과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어요. 신기하게 당신과 이미지가 비슷하기도 하고요. 서로에게 빠졌다고 해도 이해가 됐다고요. 하지만 당신이 귀족 정치인의 들러리로 들어앉는다면 도저히 참을 수가 없어서……”

   “부끄러워해라 아나킨, 진짜 살인자의 손도 네 손보다는 깨끗할 거다. 네 돌아가신 어머니가 자기 아들이 이런 쓰레기가 됐다고 하면 참 자랑스러워하시겠다.”

 

   엄지가 공이치기를 젖히며 철컥, 총이 장전되는 소리에 오비완은 전신에 소름이 쫙 끼치는 것을 느꼈다. 오비완을 향해 총을 겨눈 채로 아나킨이 계속 이야기했다.

 

   “과거에 당신은 ‘죽어야 한다면 죽을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했죠. 언제든 죽음이 찾아온다면 순응하겠다고요. 하지만 그때, 어둠에 묻혀서 잘 보이지도 않지만 분명히 나를 향하고 있는 총구를 노려보며 나는, 내가 총을 맞아 죽든지, 저 사람을 패죽이든지 뭐가 다른지 모르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러니까 나는 죽지 않기 위해 도망쳤고, 동시에 살인자가 되지 않기 위해 도망쳤어요. 하지만 영영 떠난 것은 아니었으니까, 이제 뭘 해야 할까 고민했고, 당신 말대로 어쩌면 살인만큼이나 더럽고 내가 잘할 수 있는 일을 찾아냈죠. 처음 맡은 건이 당신 스캔들일 줄은 상상해본 적도 없지만 말이에요.”

   “그래. 내가 그 사람과 함께 있는 파파라치 사진을 보면서 그렇게도 내 머리를 날려버리고 싶었니?”

   “진심으로 죽이고 싶었던 적은 없어요. 그냥 두고 보지 못한 것뿐이지. 가만히 앉아서 ‘저 둘이 얼마나 가겠어?’ 하고 쑥덕거리면서 기다리기만 하는 것보다는 훨씬 효과적이었죠.”

   “너는 정말 개자식이야 아나킨. 네가 정말 개새끼가 다 됐다는 것을 스스로 알기를 바란다.”

   “당신은 나를 구원했어요, 오비완. 당신은 나의 전부에요. 유감스럽게도.”

 

   조금씩 더 힘을 주던 검지가 마침내 방아쇠를 당겼다. 철컥, 공허한 소리가 울리며 오비완의 상체가 튀어 올랐다.

 

   “사실 빈 탄창이에요.”

 

   그리고 싱겁다는 얼굴로 총을 흔들어 보이더니 소파 빈자리에 던진다. 잠시 후 오비완이 믿을 수 없다는 얼굴로 자리에서 일어나 아나킨을 지나쳐 총을 집어 들었다. 머뭇거리는 손이 떨렸다. 총을 어떻게 잡는지, 탄창을 어떻게 분리하는지 하나도 모르는 것이 너무 티가 나는 손길이었다. 아나킨은 갑자기 위화감이 들 정도로 큰 소리로 웃기 시작했다. 웃다보니 더 웃기는지 눈물이 맺히도록 아주 죽어라고 웃어 젖혔고 그 얼굴을 내려다보는 오비완의 얼굴이 차게 질려갔다.

 

   “정말이에요, 처음 가지고 나올 때부터 비어 있었어요. 총알 하나 없다고요. 내가 미쳤다고, 이런 짓을 하면 당신이 머리꼭지가 돌아서, 그걸로 내 팔다리라도 쏴버릴지 어떻게 알고!”

 

   오비완이 총을 던지고 아나킨에게 덤벼들어 멱살을 잡았다. 그는 아나킨과 달리 근육을 쓰는 타입이 아니었기에 사실 드라마나 영화에서 본 것을 흉내 내는 수준이었다. 오비완은 무슨 말부터 퍼부어야 할지 모르겠는 기분이었지만, 사실 아나킨도 오비완도 이 다음 시나리오를 직감하고 있었다. 아마 영화 <미스터 앤 미세스 스미스>의 브래드 피트와 안젤리나 졸리와 비슷하지 않을까? 총, 아드레날린, 사랑싸움, 아드레날린, 섹스, 아드레날린. 아나킨이 오비완과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 눈빛으로 오비완의 눈을 바라보았다.

 

   “당신도 참 무서운 사람이에요, 알아요?”

 

   ‘생일 축하해. 생일이 지난 사람이든, 아직 남은 사람이든 여기 있는 모두의 탄생과 삶을 축하해 여러분.’

 

   그 멘트 후에 무대 위의 오비완은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한쪽 손을 꼼지락거리며. 열아홉 살에, 가까운 사람이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나고 죽음 뒤에 남겨진 삶을 두고, 혼자 제 방에 갇혀 비명을 질러대며 만든 노래를. 비밀, 누설, 그리고 침묵에 관한. 말하지 않아도 알아줬으면 하는, 우리가 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고 믿는 마음에 관한. 보답 받을 수 없고, 사실은 상대가 원하는 사랑도 되어줄 수 없는, 단지 영원히 지속되기만 하는 그저 고통일 뿐인 사랑에 관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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