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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한대 - Standing Eg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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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weet Day 

 퓨 미   @Lovetlao 

   “일어났어요, 오비완?”

 

   하얀 커튼 사이로 오후의 햇살이 다정하게 날아들었다. 감긴 눈 사이를 파고드는 밝은 빛이 따가워 몸을 돌리자 작게 웃는 소리가 들렸다. 일어난 지 얼마 안 된 건지, 목소리가 아직 낮게 잠겨있었지만 오비완을 수마에서 벗어나게 하기엔 충분했다. 침대를 따뜻하게 데운 안온한 온기를 느끼며 뒤척이던 오비완은 귓가에 내려앉는 살가운 목소리에 천천히 눈을 떴다.

 

   생글생글 웃으며 자신을 바라보는 아나킨의 푸른 시선과 마주하자마자 얼굴이 화끈해지는 기분이었다. 잘생긴 얼굴에 면역이 생기려면 아직은 시간이 더 필요할 것 같았다. 오비완은 버릇처럼 침대에서 일어나려다가 허리에서 느껴지는 격통에 저도 모르게 신음하며 그대로 다시 침대 위로 쓰러졌다. 미소가 만개하던 얼굴에 단번에 걱정이 서린 것도 그즈음이었다.

 

   “괜찮아요?”

   “……이게 다 너 때문이잖니, 아나킨.”

 

   이를 아득 악물며 씹듯이 문장을 내뱉은 오비완이 서늘하게 웃으며 아나킨을 노려보았다. 그제야 아나킨은 머쓱하게 미소지으며 오비완을 부축한 손을 거두었다. 한숨을 푹 내쉬고 옅은 신음을 흘리며 통증을 줄일 수 있는 자세로 몸을 말아 누운 오비완의 뒤로 슬금슬금 다가간 아나킨이 가슴께를 끌어안아 제 쪽으로 당겼다. 오비완이 버둥거렸지만 껴안은 팔은 쉽게 풀리지 않았다. 몇 번을 더 버둥거리다가 체념하자, 아나킨이 귓가를 살짝 깨물며 목덜미에 잘게 입을 맞췄다. 간지러운 감각에 오비완이 몸을 움츠리자 귓가로 낮은 웃음이 들렸다. 순식간에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아, 오비완, 너무 예뻐요.”

   “저리, 비, 켜라, 아나킨!”

   “아, 조금만요, 조금만 더 이렇게 있어요. 네?”

 

   애교를 부리며 목덜미에 입술을 묻는 아나킨의 행동에 오비완이 움찔 떨며 벗어나려는 움직임을 거둬들였다. 간지러움에 약한 탓에 조금만 움직여도 감각이 예민하게 반응했기 때문이었다. 간밤에 아나킨이 놓아주지 않고 잔뜩 괴롭힌 탓에 여기저기 가리지 않고 쑤시는 몸은 덤이었다. 오비완이 잠잠해지자 아나킨은 제 맘대로 손을 뻗어 오비완을 더욱 밀착시켰다. 얇은 이불 너머로 느껴지는 따뜻한 체온이 다정했다.

 

   “뭐 먹고 싶어요?”

   “딱히 없구나.”

   “그럼 그냥 토스트 구울까요?”

   “나쁘지 않지.”

 

   마지막으로 오비완을 세게 끌어안고 뺨에 입술을 묻은 아나킨이 침대에서 일어나 밤새 던져둔 옷을 주워입었다. 그리곤 이불에 돌돌 말린 오비완을 사랑스럽게 쳐다보고선 아침을 준비하기 위해 부엌으로 움직이는 것이었다. 오비완은 멀어져가는 아나킨의 뒷모습을 보며 천천히 상체를 일으켰다. 허리의 뻐근한 감각을 애써 무시하며 옷을 간신히 껴입고 나서야 비척거리는 걸음으로 아나킨의 뒤를 따랐다.

 

   그새 아나킨이 토스터를 돌린 건지, 빵이 구워지는 고소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넓은 유리창으로 잔뜩 쏟아지는 상쾌한 햇살을 받으며 부엌으로 향한 오비완이 바쁘게 움직이는 아나킨의 곁에 섰다. 도와주려고 온건데 손이 빠른 아나킨이 이미 잼이며 커피를 모두 준비해두었기에 오비완은 어쩔 수 없다는 듯이 작게 웃곤 식탁에 앉았다.

 

   잘 볶인 원두로 직접 내린 커피가 끈질기게 붙어있던 잠의 여운을 몰아내고 정신을 맑게 해주는 기분이었다. 한결 또렷해진 오비완의 얼굴을 보며 작게 미소 지은 아나킨이 노릇노릇하게 구워진 빵이 담긴 접시를 오비완의 앞쪽으로 밀어주었다. 보기만 해도 배가 부르다는 말이 무엇인지 알 것 같았다. 빵을 넣고 씹느라 볼록해진 볼이 너무 귀여웠다.

 

   “아나킨, 너는 왜 안 먹니?”

   “저는 아까 애들 보낼 때 먹었어요.”

   “그래도 좀 더 먹으렴.”

   “알겠어요. 그나저나 오늘 뭐 할 거예요?”

   “별 계획은 없는데.”

 

   만족스럽게 식사를 마친 오비완 앞으로 잘 깎인 사과가 놓였다. 아나킨이 접시를 내려놓으며 오비완의 뒤에서 귓가에 잘게 입을 맞추자 잠시 움찔하는가 싶다가도 태연한 목소리로 답을 하는 오비완이었다. 아나킨의 백허그를 익숙하게 받아낸 오비완은 손을 뻗어 식탁 위에 올려두었던 검은색 뿔테 안경을 끼고 펼쳐 둔 책을 끌어 당겼다. 어젯밤 미처 하지 못한 부분을 마무리할 생각이었다. 뒤에서 투정을 부리는 아나킨의 방해만 없었다면 말이다.

 

   “아, 오늘은 모처럼 애들도 없는 날이잖아요. 저랑 놀아줘요, 네?”

   “……어젯밤은 벌써 기억에서 없앴나 보구나, 아나킨. 실컷 네 멋대로 굴지 않았니?”

   “오비완……. 지금 저 유혹하는 거예요?”

   “하아, 각방 쓰고 싶어서 그러는 거지, 지금?”

   “잘못했습니다.”

 

   눈에 띄게 시무룩해진 아나킨을 보며 오비완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잔뜩 풀이 죽은 모습이 제가 원하는 것을 얻어내기 위한 모습이라는 걸 알았지만, 알면서도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다. 아나킨에게 물러지려는 자기 자신을 다잡아도 정신을 차려보면 늘 아나킨이 원하는 대로 끌려가고 있었다. 사랑하니까 어쩔 수 없지. 오비완이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이자 아나킨이 밝게 웃으며 오비완을 꽉 끌어안았다. 저도 모르게 배시시 웃음이 흘렀다.

 

 

*   *   *

 

 

   항상 유치원에서 일찍 돌아오던 루크와 레아는 오늘 놀이공원으로 소풍을 하러 가서 늦게 올 예정이었다.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아나킨은 오비완을 밤새 놓아주지 않았고, 오비완이 지쳐 잠든 사이 아침 일찍 일어나 아이들을 소풍 가는 버스에 태웠다. 아이들을 보내고 나자 나른한 아침을 이기지 못하고 다시 깜빡 잠들었고, 오비완과 함께 느지막하게 일어난 것이었다. 아이들이 없는 오후를 만끽하려던 오비완이 아나킨의 성화에 못 이겨 집 밖으로 나서서 둘이 향한 곳은 근처의 마트였다.

 

   “오비완, 이거 보세요.”

   “……당장 내려놔라, 아나킨.”

   “부끄러워요?”

   “너 자꾸……!”

   “아, 알았어요, 알았어.”

 

   마트를 들어서자 오비완의 지시에 따라 익숙하게 카트를 끌고 움직이던 아나킨이 장난스럽게 오비완을 불렀다. 위생용품 코너에서 빼꼼 고개를 내민 아나킨을 간신히 찾은 오비완이 아나킨이 손에 들고 흔드는 것을 확인하자마자 기겁하며 주위를 휙휙 둘러보았다. 다행히 본 사람은 없는 것 같았다. 콘돔 상자를 들고 생글생글 웃으며 자신을 놀리는 아나킨을 보면서 부글부글 끓는 속을 간신히 달랜 오비완이 울컥, 하며 몸을 돌렸다.

 

   “삐졌어요?”

   “…….”

   “아아, 오비완. 미안해요, 응? 그냥 너무 귀여워서.”

   “놀리니까 재밌더냐?”

   “귀여워요, 언제나.”

   “하아, 헛소리 그만하고 애들 먹을 것 좀 사서 가자꾸나.”

   “오늘 애들 안 와요.”

   “그건 또 무슨 소리니.”

   “오웬이 데려가기로 했어요. 하루만.”

   “왜?”

   “……그걸 말로 해야 알겠어요?”

 

   한 박자 늦게 이해한 오비완의 얼굴이 단번에 달아오르더니 고개를 홱 돌리며 아나킨을 뒤로하고 먼저 발걸음을 옮겼다. 아나킨이 씩 웃으며 카트를 끌고 오비완의 뒤를 따랐다. 아이들을 위한 물건들 위로 콘돔을 담는 것은 잊지 않은 채였다. 붉어진 얼굴을 애써 식히며 식품 코너로 들어온 오비완의 곁으로 아나킨이 슬그머니 다가왔다.

 

   “뭐 먹을래요?”

   “글쎄다.”

   “음……, 맛있는 거 먹을까요? 알리오 올리오? 당신 오일파스타 좋아하잖아요.”

 

   웃음을 감추지 못하는 푸른 시선이 달아오른 옆 얼굴을 쿡쿡 찌르는 것이 여실히 느껴졌다. 아나킨의 얼굴을 차마 마주하지 못하고 오비완은 고개를 끄덕였다. 말없이 스파게티 재료를 담는 오비완을 싱글벙글 웃으며 바라보던 아나킨이 손을 뻗어 카트를 쥔 오비완의 손 위로 제 손을 얹었다. 그러더니 따뜻하게 감기는 체온에 놀라 자신을 바라보는 오비완을 슬쩍 잡아당겨 허리를 감싸 안았다. 그제야 만족스럽게 카트를 밀며 다음 장소로 이동하는 모습에 오비완이 엷게 미소지었다. 구석에 다다르자, 주위를 슬쩍 둘러본 오비완이 빠르게 아나킨의 볼에 입을 맞췄다. 그러더니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재료를 담기 위해 저 멀리 걸음을 옮기는 것이었다. 아나킨이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파악하지 못하고 벙쪄있는 동안 오비완이 능청스럽게 슬쩍 웃으며 아나킨을 돌아보았다.

 

   “안 올 거니?”

   “ㅇ, 예? 가요!”

 

   능숙한 척하지만, 아직 어린 제 옛 제자였다. 허겁지겁 카트를 밀며 디기오는 아나킨의 모습을 보는 오비완의 얼굴 위로 다정한 미소가 머물렀다.

 

 

*   *   *

 

 

   “오비완, 앉아있어요. 내가 할게요.”

   “괜찮아. 그리고 둘이 하면 빨리 끝낼 수 있잖니.”

   “……알겠어요.”

 

   고개를 내저으며 바쁘게 움직이는 오비완을 보며 어쩔 수 없다는 듯이 작게 한숨을 내쉰 아나킨이 오비완을 보조했다. 오비완이 스파게티 면을 끓는 물에 넣어 삶는 동안, 아나킨은 마늘을 빠르게 썰고 치즈를 갈았다. 오일과 마늘, 페퍼론치노가 섞여 끓는 소리가 청각을 자극한다. 면을 다 삶은 후, 오일 위로 약간의 면수와 함께 면을 넣어 볶기 시작했다. 아나킨은 능숙하게 소금과 후추로 부족한 간을 하고 향이 좋은 올리브오일을 더 넣어 맛있게 볶아냈다. 소스가 면에 잘 배어들자, 오일이 식기 전에 그릇에 옮겨 담으니 오비완이 미리 준비한 파슬리 가루를 면 위에 뿌렸다. 누가 봐도 먹음직한 알리오올리오 파스타였다.

 

   다음 음식은 스테이크였다. 미리 녹여둔 약간의 등심을 달궈진 프라이팬 위로 올리고 소금과 후추로 간을 하며 육즙이 날아가지 않을 정도로 굽는 것이었다. 오비완이 말없이 열중해 스테이크를 굽는 동안, 아나킨은 적당한 온도로 식혀 둔 와인잔을 꺼냈다.

 

   “샤또 마고? 꽤 좋은 걸 구했구나.”

   “특별히 주문했죠.”

 

   오비완이 완성된 스테이크를 옮겨 담으며 놀랍다는 듯이 입을 열었다. 놀라움이 담긴 오비완의 칭찬에 아나킨은 뿌듯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오프너로 마개를 따고 주저 없이 와인잔을 채운다. 모락모락 김이 나는 음식을 앞에 두고 앉으려던 아나킨은 아, 하는 탄성과 함께 황급히 방으로 향했다. 무언가 잊은 것이 있었다.

 

   의기양양한 표정과 함께 급한 발걸음으로 나온 아나킨의 손에 들린 것은 오비완이 평소 좋아하던 향을 담은 향초였다. 아나킨의 섬세한 배려에 오비완이 웃음을 감추지 못하고 고개를 푹 숙였다. 불이 켜지자 익숙하고 따뜻한 향이 주위를 채우기 시작했다.

 

   “정말 열심히 준비했구나.”

   “그럼요, 오비완한테 잘 보여야 하는데요.”

   “그건 이미 성공한 것 같은데?”

   “……사랑해요, 오비완.”

   “나도 사랑한다, 아나킨.”

   “당신이 없는 세상이라면 아무 의미가 없어요.”

   “……”

   “어디 가지 말고 평생 내 곁에 있어 줘요.”

 

   마주한 청회색 눈동자가 푸른 시선을 사로잡는다. 포근한 웃음으로 사르르 무너지는 눈이 다정했다. 고개를 끄덕이는 오비완의 턱을 살짝 잡고 입술을 포갠 아나킨이 부드럽게 찰랑거리는 짙은 금발의 뒤통수를 조심스럽게 감쌌다. 맞닿은 가슴팍을 통해 들리는 심장 소리가 안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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