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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o Much Love Will Kill You - Que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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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oo much love will kill you 

 김 은 밤   @kimeunbam 

   물건이 정신없이 삑 삑 소리를 내며 지나갔다. 오비완은 계산대를 넘나드는 물건 대신 물건을 옮기고 있는 사람을 흘끗 봤다. 여태 기억으로만 존재했던 얼굴이었다. 붉은색 유니폼 티셔츠에 있는 명찰에는 그의 이름이 선명하게 적혀 있었다. 아나킨 스카이워커. 오비완은 미간을 찌푸렸다. 같은 이름과 같은 얼굴을 갖고 환생한 건가? 오른쪽 눈에 있는, 세로로 된 흉터까지 어쩜 저렇게나 똑같을까. 다른 점이라고는 생기 없는 표정과 조금 더 짧은 금발이라고 할 수 있겠다. 전생에 알았던 사람을 만난 건 처음이 아니었다. 콰이곤, 파드메, 윈두, 심지어는 팰퍼틴까지도 본 적이 있었다. 하지만 아나킨은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길래 환생하지 않은 줄 알았더니. 전생의 기억을 갖고 있는 자신은 특이한 축에 속했다. 전생에 알던 사람이라고 무턱대고 아는 척부터 한다면 괜한 오해를 부를 수 있단 사실은 잘 알고 있었다. 아나킨이 손을 내밀었다. 아, 계산. 그는 카드를 내밀었다. 지금 이렇게 직원과 고객으로 만난 게 우연이기만 할까. 이 세상에도 포스가 있는 게 아닐까. 오비완은 그리 생각하다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럴 리가 없지. 오비완은 산 물건들을 챙겨 나왔다. 환생한 아나킨과는 그걸로 끝일 줄 알았다.

   그날따라 회사는 오비완을 빨리 보내주지 않았다. 평소엔 꼭 시간 맞춰 퇴근해야 한다는 콰이곤조차도 그날만큼은 퇴근하라는 말을 먼저 꺼내지 않았다. 눈치가 보여 퇴근할 수도 없어 사무실에서는 아무도 나가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게, 프로젝트가 고작 사흘이 남았으니까. 오비완도 이해했다. 그렇기에 12시가 지나기 몇 분 전에서야 사무실을 나설 수 있었다. 회사와 집은 가까웠고 걸어가도 그리 먼 거리는 아니었다. 평소에는 버스를 타지만 버스를 탈 수 있을 것 같지 않았기에 오비완은 걸음을 빨리 했다. 가로등의 간격이 넓어 어둡다고 생각해왔던 골목을 지날 때 어디선가 사람을 때리는 소리가 들렸다. 오비완은 발을 멈추고 주위를 둘러봤다. 바로 근처에서 장정 서너 명이 한명을 패고 있었다. 몸을 잔뜩 감싸고 발길질을 맞고 있는 사람은 아나킨이었다. 전생에도 맞고 다니는 아이는 아니었는데 어쩌다가. 오비완은 다가가 바로 앞에 섰다. 장정 중 하나가 갈 길 가라는 듯 쳐다봤다.

   “얘 애인이라도 돼? 뭘 그렇게 보고 있어?”

   오비완은 시비를 무시하고 발길질을 멈춘 틈에 아나킨을 부축해 올렸다.

   “어서 가자, 아나킨.”

   진짜 애인이라도 되는 듯 다정하게 말했다. 장정들은 오늘 운 좋은 줄 알라는, 전형적인 말을 해댔다. 아나킨을 데리고 조금 걷자 벤치가 나왔다. 그는 아나킨을 앉히고 그 앞에 무릎을 굽히고 앉았다. 아나킨은 땅바닥을 보며 오비완과 눈을 마주치려 하지 않았다. 아나킨의 코에서는 붉은 피가 흘러내리고 있었다. 오비완은 주머니에 손을 넣어 손수건을 꺼내 그의 코를 감싸줬다. 새하얗던 손수건이 붉게 물들기 시작했다. 아나킨은 혼자 할 수 있다는 듯 저가 손수건을 잡았다. 갈 곳을 잃은 오비완의 손은 제 무릎 위에 정착했다.

   “누구세요?”

   아나킨이 그제야 오비완을 보며 물었다. 자신을 보는 파란 눈이 익숙하면서도 낯설었다.

   “오비완 케노비예요.”

   오비완은 잠시 아나킨이 제 이름을 듣고 전생을 기억해내길 바랐다. 그럴 리가 없단 것을 잘 알았지만. 아쉽게도 그가 한 대답은 아나킨이 원했던 게 아닌 듯했다.

   “제 이름을 어떻게 아는데요?”

   “며칠 전에 마트에서 봤어요.”

   아나킨은 고개를 끄덕였다. 오비완은 그가 무슨 말을 더 하길 기다렸다. 아나킨은 할 말이 남았을 때 입술을 깨물고는 했었다. 지금도 그는 입술을 깨물고 있었다. 말을 할지 망설이는 거겠지.

   “빚쟁이들이에요. 물려받은 게 빚뿐이어서.”

   전생의 죗값을 치르기라도 하는 걸까. 그가 이렇게 살기를 바란 적은 없었다. 그저 어딘가에서, 잘 살고 있기만을 바랐는데. 아나킨은 대답을 바라고 한 말이 아닌 것 같았다. 오비완은 무릎을 펴고 일어나 아나킨의 정수리를 내려봤다. 손수건은 안 돌려줘도 돼요. 이대로 정말 끝이겠지. 오비완은 뒤돌아서 원래 가려던 곳으로 향했다.

   “우리 전에도 본 적 있었어요?”

   마트에서 만나기 전에요. 아나킨의 물음에 오비완은 다시 아나킨을 바라봤다. 코피는 멎었는지 손수건을 얼굴에서 떼고 있었다. 전생에 만났던 사람들을 다시 만나면 그들은 오비완에게서 익숙함을 느꼈다. 아나킨도 그런 종류의 익숙함을 느낀 것이겠지.

   “그럴 수도 있겠죠.”

   일부러 애매한 대답을 남겼다. 아나킨을 만난 적 없다고 하고 싶지는 않았다.

 

   프로젝트는 좋게 끝났다고 할 수 있었다. 모두가 회식 자리에 기꺼이 따랐고 오비완도 빠지고 싶지 않았다. 전생의 버릇이 남아 의식을 놓을 때까지 술을 마시지 않고 적당한 때에 빠져나왔다. 살짝 어지러운 것만 빼면 멀쩡했다. 하지만 골목에서 아나킨을 마주치자 그는 자신이 정말 제정신인지 의심해야 했다. 아나킨은 담배를 피우다가 그를 보고 담배를 기대고 있던 벽에 문질러 껐다. 아나킨. 오비완의 입 안에서 이름이 머물렀다. 아나킨은 제 주머니 안에서 손수건을 꺼내 내밀었다. 새 것처럼 깨끗했다. 오비완은 그것을 받아 들었다.

 

   “돌려주고 싶었어요. 언제 마주칠지 몰라서 계속 들고 다녔어요. 만난 건 우연이니까 오해하지 마세요.”

   미행이 아니라는 말이겠지.

   “여기 근처 살아요?”

   맞고 있던 아나킨을 발견한 것도 이 근처였다. 어쩌면 근처에 살지도 모른다. 아나킨은 어깨를 으쓱였다.

   “살았었죠. 지금은 아무데도 안 살지만.”

   아마도 빚쟁이들 탓일 것이다. 빚쟁이가 따라다니는 걸 보면 그리 여유로운 삶은 아닐 테고. 만약에 아나킨을 처음 보는 거라면 어떻게 했을까. 적어도 자신의 집에 데려가 머물러도 좋다고 하지는 않을 터다. 환생한 사람들은 전생과 본성이 그리 달라지지 않는다. 콰이곤은 아직도 흥미로워 보이는 것을 자주 주워오고 파드메는 여전히 민주주의를 쫓는다. 아나킨은? 아나킨도 여전히 기계를 좋아하고, 운전을 잘 하고, 누군가를 열렬히 사랑할까. 확실한 건, 지금의 아나킨도 선할 거라는 생각이었다. 그러니까 언제 만날지 모르는 자신에게 손수건을 돌려주려 계속 지니고 다닌 거겠지. 그러니 아나킨을 제 집에서 머물도록 하더라도 나쁜 일은 없을 거라는 게 그가 스스로에게 하는 변명이었다.

   아나킨은 의문이 가득한 표정이었다. 그의 입장에서는 오비완이 처음 보는 사람이고, 의미 모를 친절을 베풀어주는 사람이었으니까. 날이 밝고 나서야 둘은 식탁에서 제대로 마주봤다. 아나킨의 얼굴에는 푸른 멍 자국이 남아 있었다. 오비완은 그에게 커피를 권했다.

   “왜 이렇게 해주는 거예요? 혹시 이런 게 취미예요?”

   아나킨이 오비완이 앉기도 전에 못 참고 물었다. 어떻게 말해야 그가 납득할 수 있을까. 만약 아나킨이 이 집에서 바로 나가고 다시는 저와 마주치지 못한다면 이 순간을 두고 후회를 반복할 것이다.

   “전생을 믿어요?”

   “네?”

   “전생에 당신이랑 인연이 있었어요.”

   아나킨은 의외로 별말을 하지 않았다. 오비완이 괜한 핑계를 댄다고 생각하는 게 분명했다. 혹은 미쳤다고 생각할 수도. 미친 취급을 받더라도 상관없었다. 미친 취급은 질리도록 받았으니 익숙했다.

   그날 이후로 특별한 일은 없었다. 오비완의 일과를 조용히 보던 아나킨은 그가 집에 있을 시간에는 집에 있지 않았다. 폐를 끼치기 싫은 듯했다. 혹은 일부러 밤에 일거리를 잡은 걸지도. 주말에 드물게 같이 있을 때면 오비완은 아나킨으로부터 전생의 흔적을 찾고는 했다. 아나킨은 처음 볼 때보다 경계를 낮췄는지 가끔 편한 표정을 보였다. 그 표정만큼은 전생과 같았다. 가끔 허공에 시선을 두는 파란 눈도. 그 모습을 보고 있으면 이곳이 코러산트의 제다이 사원인 것 같았고 둘은 여전히 제다이인 듯했다. 아나킨은 오비완을 사랑하고, 오비완은 그 마음을 모른 척하던, 위태롭게 평화를 유지하던 시절. 지금 와서 후회해봐야 늦었다.

 

 

   어렸을 때부터, 어쩌면 기억이란 게 존재하던 시절부터, 아나킨은 스스로가 남들과는 조금 다르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었다. 꿈이라기엔 선명하고, 기억이라기엔 흐릿한 무언가-아나킨은 그것을 망상이라고 불렀다-는 시도 때도 없이 아나킨의 생각을 방해해댔다. 그 망상에 의하면, 아나킨 자신은 전생에 동료와 스승을 배신한 우주의 악당이었다. 붉게 빛나는 검으로 몇 명이나 죽였을까. 그리고 걸리는 게 있다면 스승에 대한 것만 마치 퍼즐 조각을 잃어버린 듯 텅 비어 있다는 것이었다. 스승의 이름, 얼굴, 목소리, 그 무엇 하나 기억나지 않았다. 그저 그를 향했던 감정만을 알 수 있었을 뿐이었다. 전생의 자신은 그를 사랑했다. 하지만 아마도, 스승은 자신을 받아주지 않은 듯했다. 아마도 그것이 배신과 직간접적으로 연관이 있었던 거겠지. 아나킨은 그 문제에 대해 오래 집중할 시간이 없었다. 어머니는 항상 바빴고 자신 또한 걱정을 끼치지 않기 위해 어렸을 때부터 성숙한 척을 해야 했다. 조금 크고 난 후에는 살아남기 위해 현실에 치중해야 했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에는 전생의 죄 때문에 이렇게 사는 거라는 생각도 들었다.

   마트에 잠깐 일을 구했다. 하루 종일 계산대에 서서 고객들의 돈을 받고 계산해야 했다. 생각이 따로 필요 없었다. 아나킨은 다시 망상에 젖어들었다. 자신이 사랑했고 몇 번이고 품에 안았던 스승을. 그러느라 제 앞에서 계산을 기다리고 있는 남자를 눈치 채지 못했다. 저기요. 남자의 말에 그는 퍼뜩 정신을 차렸다. 어디서 본 듯한 금발과 푸른 눈이었다. 길에서 마주쳤을지도 모르지. 아나킨은 단순히 그리 생각하며 멀어져가는 남자의 뒷모습을 바라봤다.

   마트에서는 몇 번의 계산 실수 때문에 잘렸다. 어차피 관두려고 했으니 불만은 없었다. 길거리를 돌아다니다가 집 근처로 가자 그림자 몇 개가 보였다. 한 달 전에 와놓고 또. 그들은 어머니가 살아있을 적부터 얼굴도 모르는 아버지의 빚을 갚으라고 집을 드나드는 빚쟁이들이었다. 항상 집 안에 있는 물건들을 발로 차고 그것을 말리기라도 하면 그 발길질을 제게 휘두르는 불청객이었다. 빚쟁이 중 하나가 아나킨을 발견했다. 도망가기엔 이미 늦었다. 아나킨은 양팔을 그들에게 붙잡혀 구석으로 던져졌다. 그들은 시비조로 말했지만 귀에 전혀 들어오지 않았다. 순간 아나킨의 고개가 돌아가고 코에서 미지근한 액체가 떨어졌다. 손등으로 굳이 쓸어보지 않아도 그것이 코피라는 건 알 수 있었다. 그들은 아예 아나킨을 걷어차기 시작했다. 그러다 갑자기 모든 폭력이 멈췄다. 한 남자가 그들을 말리고 있었다. 남자는 아나킨에게 다가가 그를 부축했다.

   “어서 가자, 아나킨.”

   그 목소리는 퍽 다정했다. 언젠가 들어본 적 있는 듯했다.

   남자는 그를 근처에 있는 벤치에 앉히고 손수건으로 부드럽게 코를 감싸줬다. 이런 것쯤은 자신도 할 수 있다. 그렇게 말하듯 아나킨은 손수건을 제 손으로 쥐었다. 그제야 고개를 들고 남자를 똑바로 바라봤다.

   “누구세요?”

   “오비완 케노비예요.”

   오비완 케노비. 아나킨은 그 이름이 원래 알던 이름인 것처럼 익숙했다.

   “제 이름을 어떻게 아는데요?”

   “며칠 전에 마트에서 봤어요.”

   아.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오비완의 말을 듣자 며칠 전의 기억이 떠올랐다. 그래, 그 이상하게 초면이 아닌 것 같았던 남자. 오비완은 뭔가 사정을 듣고 싶어하는 것 같았다. 뭔 잘못을 했길래 그렇게 맞고 있었는지 같은. 이런 사정을 굳이 말할 필요가 있을까 싶어 연거푸 입술만 깨물었다.

   “빚쟁이들이에요. 물려받은 게 빚뿐이어서.”

   오비완은 용건이 끝났다는 듯 일어났다.

   “손수건은 안 돌려줘도 돼요.”

   다시 볼 일이 없다고 생각하는 거겠지. 다시 보더라도 이미 피로 붉게 물든 손수건은 누구도 갖고 싶지 않을 것이다. 오비완이 전처럼 등을 보이며 멀어지려 하자 마음이 급해졌다.

   “우리 전에도 본 적 있었어요? 마트에서 만나기 전에요.”

   “그럴 수도 있겠죠.”

   오비완은 천천히 멀어지기 시작했다. 그럴 수도 있다니, 그도 자신을 본 적이 있었다는 말인가? 어쩌면 그가 전생의 스승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이렇게 알 수 없는 기시감에 허우적대는 걸 수도.

   아나킨은 집에 손수건을 가져가 빨았다. 완전히 새 것처럼은 아니지만 얼핏 보면 새 것 같기도 했다. 언제 오비완을 만날지 몰라 그 손수건을 항상 갖고 다녔다. 빚쟁이들이 또 찾아올까 하는 불안감에 그냥 집을 버리고 나왔다. 어차피 안 좋은 추억뿐인 집이다. 집에서 나온 지 하루가 넘었을까, 약한 술 냄새를 풍기를 오비완과 마주쳤다. 아마도 회사원이겠지. 그러니까 저런 정장을 입고 깔끔하게 다니는 거겠지. 아나킨은 피우던 담배를 기대고 있던 벽에 문질러 껐다. 마지막 담배라는 생각이 든 건 몇 초 후였다.

   “돌려주고 싶었어요. 언제 마주칠지 몰라서 계속 들고 다녔어요. 만난 건 우연이니까 오해하지 마세요.”

   미행으로 오해받는 건 사양이었다.

   “여기 근처 살아요?”

   전에 마주쳤던 곳도 이 근처였다.

   “살았었죠. 지금은 아무데도 안 살지만.”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이렇게까지 솔직하게 말해도 되는 걸까. 이리 와요, 오비완은 아나킨을 한 아파트로 이끌었다. 설마 그의 집으로 데려가려는 건? 자신의 뭘 믿고? 또 자신은 뭘 믿고 그를 순순히 따라가는 거지? 아나킨은 밤 동안 망상을 더듬어 스승의 흔적을 찾았다. 스승이 있어야 할 자리에 오비완을 넣어 봤다. 몇 번이고 품에 안겨 신음을 내고, 자신을 보며 뒤늦게 후회하는 오비완. 위화감이라고는 없었다. 어쩌면 오비완이 정말로…….

 

 

   밤이었고 집에는 아무도 없었다. 함께 살지만 마주치지 못하는 건 익숙해진 지 오래였다. 오비완은 침대에 눕고 눈을 감았다. 현관문이 열리고 아나킨이 들어오는 소리가 차례대로 들렸다. 아나킨이 머무는 방으로 들어갈 줄 알았는데 발소리는 오비완의 방에 점점 가까워졌다. 전생이 기억이라도 난 게 아니면 왜. 아나킨이 열고 들어온 문 사이로 빛이 들어왔다. 뒤에서 오는 빛 때문에 아나킨의 표정은 보이지 않았지만 술 냄새는 선명했다. 오비완은 몸을 일으켰다.

   “오비완, 당신은 대체 누구예요?”

   아나킨이 입을 맞춰왔다. 오비완이 입을 벌리지 않자 아랫입술을 빨다가, 숨을 쉬기 위해 잠시 열린 입 사이로 말캉한 살이 들어왔다. 당연하게도, 아나킨을 밀어내고 싶은 생각은 들지 않았다. 아나킨의 손이 옷 위로 오비완의 갈비뼈를 더듬었다. 그는 입을 떼고 오비완을 밀어 완전히 그 위에 올라탔다. 저를 내려다보는 아나킨의 얼굴이 익숙했다. 자신을 처음 안을 때에도 저런 표정을 지었었다. 만족할 수는 없지만, 욕심은 채운 표정. 그리고 분명히, 사랑.

   전에도 이런 때가 있었다. 다만 차이점은 아나킨이 술에 취해 있지 않았다는 것뿐이었다. 오비완은 제자와의 잠자리를 굳이 거절하지 않았다. 그것이 아나킨의 최선이기도 했기에. 아나킨이 그를 마음에 품고 있단 사실을, 양육자인 그가 모를 리 없었다. 그때도 이렇게 정사를 끝낸 후 자신은 등을 돌리고 누웠다. 아나킨은 그의 등을 보며 속삭였다. 사랑해요. 알고는 있었지만 직접 마주하니 심장이 가라앉는 것 같았다. 받아줄 수 없는 걸 알면서도 왜 그런 마음을 가졌을까. 오비완은 그에 대한 대답을 하지 않았다. 지금 이 순간까지도.

평소처럼 알람은 울렸다. 오비완은 손을 더듬에 스마트폰 화면을 밀어 알람을 껐다. 아나킨도 같이 깼는지 오비완이 출근 준비를 하는 모습을 지켜봤다.

   “전생에 저는 어떤 사람이었어요?”

   오비완은 셔츠 단추를 잠그다 말고 아나킨을 바라봤다. 사실을 말해줄 수는 없다. 아나킨은 그걸 믿어서 물어보는 걸까.

   “제 동생 같은 사람이었어요……. 그를 사랑했어요.”

   마치 제삼자를 말하듯, 애써 덤덤하게 말했다.

   “그럼 말 놔요. 그게 편하겠네.”

   작게 웃음이 터졌다.

   그날부터 아나킨은 굳이 밤에 집을 비우지 않았다. 아나킨과 마주보고 대화하는 일이 늘었다. 오비완이 궁금해 하는 눈치이자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기도 했다. 성인이 되기 전에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아버지는 어디 있는지도 모르는데 살아있기는 한 건지 빚쟁이들만 몰려들고, 그걸 피하기 위해 일단 집을 나왔는데 갈 곳은 전혀 없었다는 것. 아나킨이 차마 말하지는 못했지만 그는 오비완을 이용할 셈이었던 게 분명했다. 그런 상황에 머물 곳을 내어주니 필요할 때까지 머물 작정으로. 그렇다면 그날 밤 본 사랑은, 그저 착각일까. 과거에 사느라 현재를 똑바로 보지 못한 거다. 계속해서 후회하는 순간이 그를 그렇게 만든 거다.

   오비완은 항상 아나킨으로부터 등을 돌리고 잤다. 사랑해요, 아나킨이 그리 속삭였다. 환청을 듣는 줄 알았다. 아나킨은 자신이 자는 줄 알았겠지. 혹은 진심이 아니거나. 오비완은 몸을 돌려 아나킨과 마주 누웠다.

   “너무 많은 사랑이 너를 죽일 거야.”

   그 말은 필시, 오비완과 아나킨 둘 다에게 필요한 말일 게 분명했다. 어쩌면 오비완에게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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