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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ver, please stay
H a z e l @_anaobi_
오비완은 문을 두드리기 전 ‘안녕하세요.’ 같은 상투적인 말을 하는 게 좋을지, 아니면 단도직입적으로 ‘하숙하기로 한 사람인데요’ 하고 목적을 밝히는 것이 좋을지에 대해 고민했는데 그건 다 부질없는 짓이었다. 한 번이면 끝날 줄 알았던 노크가 두세 번이 되고, 오비완은 한밤중에 남의 집 대문을 두드리며 큰 소리로 “스카이워커씨 안에 계신가요? 하숙하기로 전화 드렸던 사람입니다.”하고 외쳐야 했으니, 어쩌면 예의와 목적 모두 다 챙긴 셈이었다.
“잠시만요!”
벨벳같이 매끄럽고 담백한 목소리다, 하고 오비완이 목소리에 대한 감상을 펼칠 동안 문 뒤편에선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무언가가 넘어지고 끌리는 소리가 한창이다. 오비완은 저 젊고 아름다운 목소리의 주인이 제발 정신을 놓지 않기만을 바랐다.
“어서 오세요, 케노비씨 맞으시죠?”
문이 열리고, 자신보다 한 뼘 정도 큰 남자가 인사를 건넨다. 그는 한 발짝 물러서며 손을 내밀었고, “편하게 오비완이면 됩니다.” 그 손을 맞잡으며 오비완이 말했다. 남자는 누가 보아도 급하게 나온 기색이 역력한 티셔츠 한 장과 엉클어진 머리를 하고 있었는데 오비완은 그보다도 보기 드문 미형에 더 관심이 쏠렸다. 유려하게 뻗은 콧날과 턱선은 과하지 않았고, 길게 드리워진 속눈썹 사이로 눈을 깜박일 때마다 드러나는 푸른 눈동자가 매력적이었다. 아마 소리를 듣지 않았다면 목선을 따라 구겨진 셔츠마저 어떠한 명화적 연출이라 여겼으리라.
“저도 아나킨이라고 불러주세요.” 남자는 들어오라는 손짓을 취하며 덧붙인다.
“내일 오전쯤 오실 줄 알았는데.”
“원래는 그럴 예정이었는데, 생각보다 일찍 도착하게 됐습니다. 문자로 연락드렸는데.”
“아…”
남자의 시선이 한곳에 머물렀고, 오비완은 그를 따라 몸을 돌렸다. 시선이 따라간 곳엔 빛바랜 카펫 위로 담요나 쿠션으로 추정되는 것들이 엉켜 원래의 형태를 잃은 채 둥글게 뭉쳐 있었다.
“휴대폰이 저 골칫덩어리 속에 있어서.”
남자는 멋쩍게 웃으며 제 머리칼을 마구 헝클어뜨렸다. “원래 이렇게까진 어지럽지 않아요.” 하고 그는 조금 긴장했는지, “라이터 있으세요?” 하고 묻는다. 오비완은 내밀어 진 담배 코에 불을 붙이며 그늘진 손가락의 마디가 참으로 길고 창백하구나 하고 생각한다. 손이 예쁜 사람은 싫어하지 않았다, 물론 얼굴도.
“묵으실 방부터 안내해드릴게요, 따라오세요.”
아나킨은 계단을 올라가며 말했다.
“이미 계약서를 읽으셔서 다 아시겠지만, 냉장고에 있는 건 원하시면 아무거나 드세요. 세탁할 거리는 월요일 아침에 집안일을 도와주시는 분이 들를 때까지만 내놓으시면 되고. 방해되지 않을 정도라면 친구를 부르셔도 되고. 또…….”
오비완은 젊은 청년의 뒤통수를 바라보며 묵묵히 따라 올라갔다. 이어진 계단의 위로 노란 불빛이 점차 들어왔기에 청년의 머리부터 어깨를 따라 서서히 밝아져서, 흔들리는 빛 아래에서도 그가 아주 단단하고 깨끗한 선을 가졌다는 것쯤은 알 수 있었다.
그들은 계단의 끄트머리에서 멈춰 섰는데, 복도의 양옆으로 나 있는 문 중 오른쪽 문을 가리키며 아나킨은 여기가 자신이 방이라고 소개했다. 오비완의 방은 계단에서 조금 떨어진, 복도의 가장 끝에 위치했는데 침대와 책상, 그리고 침대 쪽으로 작게 나 있는 창을 제외하고는 특별할 것이 없었다. 바닥에는 짙은 빛깔의 페르시안 카펫이 깔려 있었고 카펫이 끝나는 지점에 문이 하나 더 나 있었는데, 남자는 여기를 통해 발코니로 나갈 수 있다고 설명했다.
“방이 굉장히 깔끔하네요.”
오비완의 칭찬에 남자는 조금 멋쩍은 듯 웃는다. ”저 혼자 산 지 꽤 되어서, 대부분 안 쓰는 방이었거든요.“ 오비완은 그제야 중개인이 스치듯 흘렸던 ‘유산’의 의미를 이해할 수 있었고, 한층 조심스러워진 태도로 물었다.
“들어가지 말아야 한다거나 하는 곳이 있나요?.”
“저주받은 방이라던가?”
실없는 농담을 던지고, 남자는 제 농담이 제법 마음에 들었는지 웃는다. 오비완도 덩달아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런 건 아니지만, 사적으로 침해받고 싶지 않은 공간이 있을 수도 있으니까요.” 오비완의 목소리가 부드럽게 떨어졌고, 시선이 마주친다. 남자의 눈이 곱게 휘었다.
“원하신다면 제 방도 쓰세요.”
다소 불순하다 싶을 정도로 장난기 가득한 눈빛이다. 아나킨은 오비완을 응시한 채로 담배를 베어 문 입술을 당겼고, 고개를 돌리며 내뿜는다. 그러는 동안에도 그 생기 넘치는 푸른 눈동자는 오비완에게 붙박여있었기에 오비완은 뜻 모를 긴장감에 사로잡힌다.
그러나 그게 마지막 모금이었다는 듯 아나킨은 담배를 말아쥔 손가락을 가볍게 털어내었다. 붉은 불씨 덩어리가 약하게 빛을 발하며 그의 손가락에서 떨어져 내렸고, 이내 사그라든다.
“저는 이만 가볼 테니, 불편한 게 있다면 언제든지 말해주시고요.”
남자는 속삭이듯 덧붙인다. “잘 자요.” 밀담이라도 나누듯, 아주 다정한 목소리였다.
그날 밤 오비완은 꿈을 꾸었다.
* * *
창문으로 쏟아지는 햇살은 야단스럽거나 들뜨지 않고 다만 포근했다. 오비완이 즐겨 먹는 메뉴들로 아침 식사를 준비하고 있을 때, 아나킨이 계단에서부터 내려오는 소리가 들렸다. 오비완이 이곳에 머무른 지도 일주일 째 그들 사이에서는 많은 변화가 일어났는데 그중 하나는 호칭을 사용하는 걸 그만두었다는 것이다. 한사코 말을 놓으라는 아나킨의 부탁에도 오비완은 처음에는 집주인과 하숙객이라는 위치를 고려해 아나킨씨, 하고 불러왔으나 마주치는 횟수가 늘어날수록 오비완도 호칭의 불편함을 인정해야만 했다.
아나킨은 “좋은 아침이네요, 오비완.” 하고 인사를 건네었고, “좋은 아침이네요.”하고 상투적인 대답이 돌아왔다.
그들의 대화는 대부분 그런 식이었다. 아나킨이 묻고, 오비완이 대답한다. “오늘 아침은 뭐에요?” 라고 묻자 “수플레 팬케이크하고, 딸기요.” 라는 대답이 돌아온 것처럼 말이다. 아나킨이 파악한 오비완은 말수가 적은 사람이라기보단, 불필요한 이야기를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에 가까웠다.
아나킨 또한 타인을 위해 불필요하게 친절을 베푸는 타입이 아니었다. 그러나 자정에 가까운 시간에 단잠을 깨트리며 자신을 찾아온 남자에게 심술을 부리지 않은 것은, 오비완의 얼굴이 자신의 취향인 탓이 컸다. 그러니까 말하자면 홀린 거지. 아나킨은 반듯하고 노릇노릇하게 굽혀진 수플레 팬케이크와 오비완을 노려보며 생각했다. 어디서 구했는지 자신도 처박아두고 잊고 있었던 흰색 앞치마를 걸친 모습이 빌어먹게도 잘 어울린다.
낯선 사람에게 첫눈에 반하는 일 따위, 아나킨은 제 인생에 그런 일은 절대로 일어나지 않을 동화적 환상 정도로 치부해 왔었다. 그러나 오비완의 섬세한 푸른 눈동자가 자신을 들여다볼 때 아나킨은 마치 좋아하는 사람을 앞에 두고도 어찌할 줄 모르는 십 대처럼 굴었고, 자신이 어떻게든 오비완의 관심을 끌기 위해 반쯤 안달 나 있다는 사실만은, 인정해야 했다.
하지만 아나킨은 기계를 다루고 조립하는 것에나 능했지 사람에게는 영 신통치 않았기에, 그들의 대화는 자주 끊겼다. 아나킨은 기계에 대한 지식만큼은 누구에게도 뒤처지지 않을 정도로 자신이 있었지만 오비완은 기계치였고, 오비완은 작가였지만 아나킨이 글에는 전혀 일가견이 없었다. 아나킨이 오비완과 공통된 화재로 떠들 수 있었던 건 기껏해야 ‘폭풍의 언덕’이나 ‘한여름 밤의 꿈’정도였는데, 감명 깊게 읽은 척했지만 사실 아나킨은 그것들에 디머트리어스만큼이나 관심이 없었다.
오비완은 그걸 가장 인상 깊게 본 이유를 물어봤고, 아나킨은 1학년 때 그것들로 레포트를 쓰느라 고생했던 이야기로 오비완을 웃겼는데 그때의 오비완의 눈빛, 말씨, 그가 웃을 때 어떤 식으로 입꼬리를 올리고 그 웃음이 얼마나 다정한 울림을 지녔는지를, 아나킨은 그에게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내리쬐는 여름이 아름답게 눈부셔서, 바람이 차창에 부딪히는 소리가 마치 파도처럼 들린다. 오비완의 머리카락은 햇빛에 닿아 모래알처럼 반짝였고 단정한 흰색의 셔츠에서는 담배와 마른 잉크, 그리고 딸기의 향이 난다. 가벼이 맞댄 입술은 과육을 부드럽게 씹어내고, 테이블에는 웃음이 머문다. 그것들은 모두 갑작스럽게 들이닥쳤지만, 여름처럼 무덥고, 또 영화의 한 장면 만큼이나 느리고 은밀하다. 아나킨은 어느 순간부터 자신의 여름은 지금 이 순간에 멈춰 서서 영원히 벗어날 수 없을 거라는 직감을 한다.
‘말도 안 돼….’
첫눈에 반한다는 말을 믿지 않는다고 당당히 말하던 제 꼴이 우스워졌다. 여전히 먹지 않은 수플레 케이크가 반듯하게 놓여있었고, 아나킨은 그걸 반쯤 퍼먹을 때야 그 말도 안 되는 일이 일어났음을 깨달았다.
* * *
아나킨의 상태가 이상하다는 것을 오비완이 눈치챈 것은 얼마 전쯤이었다. 저녁을 사 오겠다며 나갔다 돌아온 아나킨은 비에 쫄딱 젖은 채였고, 비에 젖은 신발로 성큼성큼 걷다 하마터면 바닥을 구를 뻔해서 오비완이 잡아줘야만 했는데, 오비완의 손이 닿자마자 소스라치게 놀라며 손을 빼내려는 바람에 오비완까지 함께 넘어져야 했기 때문이다. 어쩌다 보니 깍지를 낀 채로 바닥을 함께 뒹굴게 된 오비완은 한숨을 쉬었고, 미안해서 얼굴까지 새파래진 아나킨을 내려다보며 소파에 앉아서 기다리라고 했다. 생각해보면 근래 자신을 피하는 듯한 모습에 돌아갔을 때 이미 자리에 없는 게 아닌가 싶었지만, 어지간히도 미안했는지 아나킨은 그가 시키는 대로 얌전히 소파에 앉아 있었다.
오비완은 가져온 수건으로 아나킨의 얼굴을 닦아주려 하고 “이런 것쯤은 저 혼자 해도 괜찮은데.” 아나킨이 볼멘소리를 낸다. 그러나 아나킨의 푹 젖은 머리카락을 넘기는 손길을 거부하지는 않는다. 그러게 얌전히 돌아다녔으면 좀 좋으냐는 핀잔을 주려다가,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얼굴을 보고 관두었다. “낮에 먹은 것도 남아있고, 굳이 나갈 필요는 없었는데.” 대신에 낯선 위로의 말을 입에 올린다.
얌전히 있으라는 제 핀잔에 축 처져서 몸을 맡기는 아나킨은 꼭 비에 젖은 강아지 같다. 오비완은 이 젊고, 잘생기고, 하지만 어리숙한 구석을 가진 청년의 얼굴을 꼼꼼히 닦아준다. 얼굴에 가볍게 닿은 수건은 이마에서 눈두덩이를 부드럽게 쓸며 볼로 떨어졌고 -이때 아나킨의 속눈썹이 두어 번 파르르 떨렸기에 오비완은 재차 ‘가만히 있어요.’ 하고 주의를 주어야 했다.- 입술에 잠시 머물던 손끝은 목으로 이어지는 부분까지 꼼꼼히 닦아낸다. 밖은 어두웠고, 방안은 빗방울이 창틀에 떨어지는 소리로 가득했으며 빛이 흘러내려 아나킨의 눈두덩이와 그 아래 우묵히 괸 그림자를 그려내고 있었다. 오비완은 그 모습이 새삼 아름답다고 느낀다.
오비완의 손이 멈춘 틈을 타, 아나킨이 “이제부턴 제가 할게요.” 하며 그의 손목을 부드럽게 잡아끌었다. 거슬거슬한 손바닥이 살갗에 닿아 어쩐지 낯간지러운 기분이 된다. 아나킨의 목소리는 낮았고, 또 금방이라도 코에 닿을 듯 가까웠는데 얼굴을 닦아주느라 서로 얼마나 가까워졌는지를 인지하지 못한 탓이었다.
“오비완.”
이름을 부르며, 그는 가만히 눈을 들어 오비완을 응시한다. 푸른 눈동자는 기묘한 갈망을 담은 채 일렁이고 있었고, 오비완은 그게 꼭 불꽃 같다고 생각했다. 처음 만난 날부터 지금까지, 저를 필연적으로 사로잡아 휘감을 푸른 불꽃.
아나킨의 입술이 가까워졌으나 오비완은 피하지 않았다. 다만 그는 언젠가 읽었던 글의 한 구절을 떠올렸다. ‘나는 멀리 떠나 왔어. 당신이 거기에도 있었을 뿐.’
그러나 입술은 닿지 않았고, 숨이 맥없이 떨어져 나간다. 아나킨은 오비완의 손목을 놓았다.
“……죄송해요.”
오비완은 답하지 않고, 아나킨은 얄팍한 변명도 사과도 없이, 도망치듯 오비완을 떠난다.
손이 닿았던 자리만이 화끈거렸다.
* * *
비는 쉬지 않고 내렸다. 방이 어둠에 잠기고 다시 어슴푸레 밝아지기까지, 빗소리는 계속 이어졌고 아나킨은 한숨도 잘 수 없었다.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며 머릿속으로 그린 최악의 상황은 그가 마음을 정리하기도 전에 오비완이 그를 떠나버리는 것이었다. 아나킨은 자신의 실수로 이 모든 관계가 무너지는 것이 두려웠다.
결국 아침 일찍 집을 나섰고, 오랜만에 친구들을 만나 얘기도 하고 드라이브도 해보았지만 어딘가 허전한 느낌을 감출수가 없어, 아나킨은 위스키를 마시다 결국 울었다. 사랑에 빠지면 바보가 된다더니, 제가 딱 그 꼴이었다. 너무나도 갑작스럽게, 아나킨은 일부러 잊으려 했던 모든 감정이 벅차오르는 것을 느꼈고 문득 오비완과 함께 하는 아침 식사가 그리웠고, 평범하게 나누던 대화가 그리웠다. 결국에는, 가장 평범한 것들이 그리웠다.
그리고 그가 너무나도 보고 싶었다.
아나킨이 집에 도착했을 때, 늦은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오비완의 방은 활짝 열려있었는데 그는 발코니의 야경을 배경 삼아 아주 늦게까지 글을 쓰고 있었다.
“여기 계셨네요.”
오비완, 하고 그의 이름을 불러보면 오비완의 푸른 눈동자는 아주 잔잔하게, 미동도 없이, 끄덕이며 작은 눈인사를 건넨다. 이렇게 괜찮을 줄 알았다면 처음부터 도망치지 않고 마주해 보는 것인데, 정말이지 오비완의 어른스러움에 아나킨은 맥이 풀리는 기분이었다.
“오래 계시면 감기 걸려요.” 아나킨은 오비완에게 제 코트를 벗어 주었고, 오비완은 그런 아나킨을 비스듬히 올려다보며 그가 제일 좋아하는 웃음을 지어준다.
“널 기다리고 있었단다.”
그 한마디에, 아나킨은 실례라는 것을 알면서도, 담배를 베어 무는 것을 멈출 수 없었다. 그렇지 않으면 지금 당장에라도 키스해버릴 것 같았으니까. 아나킨은 제 열망이 이성을 앞지르기 전에 오비완의 입으로 확답을 듣고 싶었다. 당신을 사랑해도 괜찮다는 확답을.
“가끔은 말하지 않으면 영원히 모르는 것들이 있지.”
사실은 너를 처음 만난 날에 꿈을 꿨어. 꿈속에서 나는 너를 알고 있었고, 그때의 나는 두려워서 차마 하지 못했던 말이 있어. 말하지 않아 영원히 몰랐던 것들.
기억은 기억일 뿐이고, 과거에 붙잡혀 살아갈 마음도, 후회에 빠져 살아갈 마음도 없어. 하지만 다시 너를 만난다면, 다시 너와 사랑에 빠진다면 꼭 하고 싶었던 말…….
“아나킨, 나는 너를 사랑한단다.”
밤은 이렇게나 어두운데, 오비완은 아나킨이 자신을 바라보는 눈빛만큼은 선명히 바라볼 수 있었다. 때로는 단단하고 환한 횃불이었다가, 누구보다 강렬히 빛나는 여름의 태양이었다가, 가끔은 한없이 부드러워질 수 있는 등불 같은 빛을.
“오비완.”
“……”
“떠나지 말고 제 곁에 머물러줄래요.”
오비완은 대답하는 대신 아나킨의 담배를 앗아 들고는 입술에 물어 당겼고, 고개를 돌리며 내뿜는다. 처음 만난 날처럼, 이번에는 오비완이 아나킨에게서 눈빛을 떼어내지 않는다. 붉은 불씨 덩어리가 어두운 밤을 수놓듯 우수수 빛나며 흩날렸다. 빛이 나는 것은 아름답다.
“네가 원한다면.”
오비완의 대답에, 아나킨은 주저 없이 그의 뺨을 붙잡고 입술을 가까이한다. 나는 당신을 밀어낼 수 없어. 그러니까 당신도 나를 밀어내지 말아 줄래요, 나의 여름.
이마가 먼저 맞닿았기에, 아나킨은 오비완의 숨을 아주 가까이에서 느낄 수 있었다. 그는 눈물이 얼룩진 얼굴로 이 순간을 만끽한다. 사랑하는 이의 체온이 살갗을 파고들어 오래도록 놓아주지 않는 순간을. 마침내 입술이 맞닿았고, 키스에선 당신을 닮은 딸기와 담배의 맛이 났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