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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ttention - Charlie Pu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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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비완은 벽에 줄지어 걸린 작은 액자들을 하나하나 주시하고 놓아주며 긴 복도를 걸었다. 그는 매스꺼움을 느꼈다. 한 가지 생각이 끈질기게 머릿속을 떠나지 않아서였다.

   ‘어쩌면 그가 기다리고 있지 않을까?’

   터무니없는 생각이라며 스스로 타박했다. 그러나 예감은 은근슬쩍 확신으로 모습을 달리했다.

   복도에는 담소를 나누는 무리가 많았다. 하나 같이 단정한 정장에 똑 떨어지는 보타이를 맸고, 상기된 뺨과 열 오른 귀 한 쌍, 역한 알코올 향을 흘리는 입을 가졌다. 호텔에서 열린 책 발표회에 이어 이른 저녁부터 시작된 뒤풀이 파티에 참석한 이들이었다. 오비완이 답답한 보타이를 풀어버리려 할 때마다 그들은 오비완을 발견하곤 눈인사를 보내왔다. 가능하다면 가는 길을 멈추고 자신들과 대화하길 바라는 눈치였다. 오비완은 여러 무리와 마주쳤고 그런 무리 한명 한명에서 예의 바른 미소로 답하는 일은 고역이었다.

   ‘그 애가 기다리고 있을 텐데.’

   오비완은 엘리베이터를 잘못 타는 바보 같은 실수를 저질러 남은 4층을 비상구로 뛰어 올라가야 했다. 밭은 숨을 고르고 마지막으로 호텔 방 문을 열자, 그는 낯선 곳에 도착했다. 단번에 알았다. 일주일 전 직접 예약하고, 오늘 낮에 체크인했던 방이었으니까.

   단 한 점의 불빛도 밝혀져 있지 않았다. 아마 몇 시간에 걸쳐 천천히 어둠과 친해졌을 것이다. 서로 대화를 나누지 않더라도 어색하지 않을 때까지, 노을이 창을 통과해 들어와 서서히 떠나갔을 때부터. 친구가 된 어둠 속에서 오롯이 혼자인 사람이 있었다. 오비완이 고대하던 그 남자였다.

   오비완은 급히 보타이를 풀어버렸다. 그 남자가 말했다.

   “제가 이걸 쏜다면 어떻게 될까요?

   “뭐?”

   “이 총 말이에요.”

   “아나킨.”

   열린 창으로 불어든 바람은 오비완의 재킷 사이로, 그리고 셔츠 품 안으로까지 빠르게 스몄다. 기다렸다는 듯이. 오비완은 현관에 선 채 그대로 얼어붙었다.

   오비완이 무엇보다 가장 먼저 떠올린 생각은 이랬다.

   ‘이 추위에, 아나킨은 괜찮을까?’

   오비완은 몹시 추웠다.

   싸늘한 바람이 창가에 비스듬히 기대앉은 청년의 곁을 지키며 그의 갈색 머리칼과 흰 커튼을 어지러이 풀어헤쳤다. 청년은 복도에서 마주친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검은 정장을 차려입었지만, 보타이는커녕 단추 두어 개를 풀어헤친 모습이었다. 셔츠 깃이 바람에 멋대로 흔들렸다.

   지금, 이 순간에만 할 수 있는 말을 고르기에 앞서, 오비완은 입을 꾹 다물었다. 다물어진 입술이 추위에 파르르 떨렸다. 변덕은 순식간에 일어났다. 찬 기운이 갑자기 숨을 죽인 것이다. 오비완은 처음 보았다. 오비완 케노비는 그렇게 아름다운 것을 처음 보았다. 찬란한 LA의 야경이 아득해 보일 정도였다. 오비완 케노비는 재빨리 최선의 문장을 택했다.

   “총이라니, 아나킨. 야만적인 무기구나.”

   청년은 미소 지었다.

   “이거 교수님 거잖아요?”

   작은 리볼버가 청년의 오른손에 머물렀다가 왼손으로 건네졌다. 손길에서 장난기가 덕지덕지 묻어났다.

   “저기서 찾았어요.”

   아나킨은 손을 뻗었고 손가락 끝이 개인금고로 향했다. 오비완은 그다지 놀라지 않았다. 언젠가, 그가 자신의 방에 홀로 남는 일이 생긴다면 쉽게 발견하리라 생각해온 덕분이었다. 비밀번호도 아주 쉬웠다. 아나킨이라면 모를 리 없는 숫자의 나열이었다.

   “와인이라도 마실까요?”

   청년은 이미 이 방의 주인이었다.

   “저기 공짜 와인이 있던데.”

   “나도 봤단다. 하지만 그다지 마시고 싶지 않구나.”

   오비완은 꼬박꼬박 대답했다. 그러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요?”

   “그래.”

   “흠, 정말 좋은 와인이던데. 아쉽네요.”

   “그렇구나.”

   “파티는 끝났나요?”

   “아직 끝나지 않았어.”

   “그런데 왜 벌써 오셨어요?”

   “네가 파티장을 나가는 걸 봤다.”

   “제가 보고 싶으셨어요?”

   오비완은 뜸 들이지 않았다.

   “그래.”

   “파티를 참 오래도 하네요.”

   “그런 것 같구나.”

   “새 책 발표를 참 좋은 곳에서 해요.”

   “그렇지.”

   “책 내용이 어떻게 되죠?”

   “그건…….”

   대화 속으로 얄팍한 쇠 부딪히는 소리가 깔렸다. 리볼버의 실린더에서 탄환이 빠져나왔다가 다시 끼워 맞춰지는 소리였다. 누군가 대화에 집중하지 않고 있다는 증거였다. 그러나 그 누구도 대화가 끊기길 바라지는 않았다.

   “작가가 되려면 허세 좀 부릴 줄 알아야 하는 걸까요?”

   오비완은 대꾸할 말을 골라낼 수 없었다.

   “이렇게 화려하게 할 필요가 있나, 새로운 책 발표는 핑계고 그냥 파티잖아?”

   빙긋 웃는 청년 앞에서, 오비완은 차라리 비가 내리길 바랐다. 천연덕스럽게 먹구름이 몰려오길―그렇게 된다면 청년은 어쩔 수 없이 창을 닫고 방 안으로 몸을 들일 테였다. 어깨가 완전히 젖어버리기 전에 빗물을 털며 걸음을 옮길 테고, 테이블을 사이에 둔 채 오비완과 마주 앉을지도 몰랐다. 그들은 아나킨의 입맛에 맞는 값비싼 와인을 따르며 이전에 못다 했던 이야기를 나눌 수도 있었다. 아나킨과 나누는 대화는 언제나, 다시는 되감을 수 없을 만큼 쉽사리 풀려버리곤 했다. 자연스럽게 흘러갔던 대화를 이후에 떠올려보면 뜬금없고 허황하며 무모하기까지 했지만, 그 모든 것을 차치하고서라도 즐거움에는 거짓이 없었다. 오비완은 그와의 대화를 언제나 환영했다. 그가 떠나기 전에도, 그 후에도. 지금도 그랬다.

   아나킨은 이곳을 떠나지 않을 수도 있었다.

   “와인 마시겠니?”

   “아니요. 그다지 안 마시고 싶네요. 제겐 너무 사치스럽죠.”

   오비완은 아나킨의 대답을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혀 아래까지 비쩍 말라버려서 레드와인으로 목을 축여야 했기 때문에. 오비완은 열린 창을 등지고 와인이 놓인 테이블로 곧게 걸었다. 바닥을 감싼 벨벳 카펫은 구두 소리를 은밀히 삼켰다. 그는 아나킨이 사치스럽다고 말한 와인과 와인오프너를 동시에 집었다. 능숙한 손길이 코르크를 땄고 나란히 전시된 와인잔 두 잔을 손가락 사이에 끼워 들어 올렸다. 그리고 원한 대로 레드와인을 무작정 잔에 따랐다.

   “아나킨?”

   오비완은 거의 비명처럼 그의 이름을 불렀다.

   창가가 텅 비었다. 어둠과 나란히 앉아 있던 청년 대신, 미적지근한 바람과 연약하게 흔들리는 커튼만이 남겨졌다. 와인잔은 부드러운 바닥에 닿는 것만으로 파열음을 내지르며 생을 끝냈고, 와인병은 품고 있던 레드와인을 모두 토해내며 어둠 저편으로 길게 굴러갔다. 벨벳 카펫이 삽시간 적색으로 물들었다. 어둠 속에서 그 색채는 검붉은 피였다. 단숨에 생긴 상처에서, 분수처럼 쏟아져 나와, 산화되어, 결국 새까맣게 말라붙어버리는……. 무척이나 현실적이었다. 실제 같았다. 실재했다.

   “아나킨.”

   그는 홀연 사라졌다. 바람은 쌀쌀맞지 않았다. 누군가의 이가 서로 부딪혀 딱, 딱딱, 소리를 냈다.

   딱, 딱딱.

   소리가 끊이질 않았다. 계속해서 이어지고, 이어져서, 점점 더, 커졌다. 점점 더, 커져갔다. 이가, 부러질지도, 몰랐다. 입, 안쪽 살,이라도, 깨문다면? 피를, 볼, 것이다. 혀를. 씹는다면? 끊어질, 수도,……. 떨리는 몸뚱이를 견디며 이를 세게 깨물었다, 우드득, 이 갈리는 소리가, 났다, 이어졌다.

 

   “오비완?”

   오비완은 이를 뿌드득 갈며 몸을 뒤척였다. 청년이 그를 깨웠다. 전날 밤 오비완이 맞춰둔 휴대폰 알람은 기세 좋게 딱, 딱딱 울려댔다. 신경을 거스르는 박자였다. 사근사근한 아침 바람이 열린 창을 통해 그들 곁으로 다가왔다. 흰 커튼만 나풀거릴 뿐, 창가에는 아무도 없었다. 방에는 두 남자만이 같은 침대에 나란히 있었다.

   “오비완.”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에 오비완은 눈을 떴다. 참 다정한 목소리였다. 눈꺼풀은 한없이 무겁고 삐걱거리는 데다 눈알은 뿌리까지 뻑뻑하게 말라붙어버려서 눈을 뜨는 것만으로 갑자기 눈물이 고여버리긴 했지만.

   “안 좋은 꿈 꿨어요?”

   청년의 목소리는 한없이 부드러워질 수 있을 것 같았다. 오비완은 무슨 말이든 대답하고 싶었지만 목이 잠겨 아무 말도 못 했다. 그 순간에도 알람은 끝없이 울려댔다. 청년이 갑자기 몸을 움직였다. 비스듬히 베고 있던 베개를 침대 밑으로 떨어뜨리고 시트 안을 뒤지고 오비완의 허리에 올라타 그가 머리끝까지 덮고 있는 이불을 이리저리 들쑤셨다. 오비완은 이불밖에 없었기 때문에 어떻게든 빼앗기지 않으려 애썼다.

   “으응…아나킨, 그만, 그만 좀…….”

   하지만 아나킨은 그만두지 않았고, 악몽 꾼 거면 잤어도 잔 게 아닐 텐데 더 자는 게 어때요, 오늘 수업 없죠, 제가 푹 잘 수 있게 해줄게요, 제가요, 이게 어딨지?―끝없이 소곤소곤 말을 걸었다. 오비완은 더 자고 싶지 않았다. 대신 조금 빈둥거리고는 싶었다. 아나킨은 베개마저 빼앗으려 했고 오비완은 끝까지 버텼다.

   “근데 무슨 꿈 꿨어요?”

   “아, 아…몰라.”

   “네에?”

   “잘 모르겠다니까! …자꾸.”

   곧 아나킨은 목표를 바꿔 침대 발치로 내려갔다. 그리고 마침내 딱딱, 딱, 거리는 알람음이 꺼졌다. 그제야 오비완은 아나킨과 실랑이를 벌인 이유를 이해했다.

   “당신이 꿈을 기억 못 한다고요?”

   둘은 가만히 침대에 누웠다. 나란히 누운 채로, 아나킨이 슬쩍 오비완을 손을 잡아서, 둘은 손깍지를 끼고 침실 천장을 바라보았다. 알람이 꺼지자 아침이 끝난 것 같았지만 여전히 아침이었다. 조용했다. 아나킨은 자신이 창문을 열어두었다고 말했다. 아침이면 환기를 해야죠. 맞는 말 같았다. 오비완은 아나킨의 잡담을 들으며 바닥에 널브러진 옷가지를 물끄러미 내려다보다가 다시 한번 이불을 꽁꽁 싸맸고 꿈지럭거리며 아나킨에게로 몸을 틀었다. 그가 바라본 아나킨은, 후드 티에 청바지를 입고 있었다. 후드 티는 보라색이었고 청바지는 무릎 부분에 옆이 긴 직사각형 구멍이 나 있었다. 매일 지겹도록 매는 벨트도 허리에 딱 맞게 차고 있었다. 바람이 불었다. 미적지근한 바람이었는데도, 오비완은 몹시 추웠다. 눈에 보이는 아침 햇볕이 한없이 따스하다는 것은 알고 있으면서도. 한참 만에 대답이 나왔다.

   “나도 꿈이 기억 안 날 때가 있단다.”

   “그렇구나.”

   “사람이라면 보통 그렇지.”

   “하지만…당신은 꿈 내용으로 소설을 자주 쓴다면서요.”

   “그렇긴 한데…….”

   “아― 알았어요. 그렇기도 한데, 이렇기도 한 거죠?”

   아나킨은 웃었다. 계속 이야기했고 계속 미소 지었다.

   무엇인가 놓치고 있었다. 적어도 오비완은 그렇게 믿었다. 그는 전날 밤 꾼 꿈을 잘 기억해내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기분이 좋지 않은 것 같았다. 지난밤 꿈을 까무룩 잊어버려서. 오비완은 매스꺼움을 느꼈다. 기분전환이 필요한 때였다.

   “이번 주까지, 맞지?”

   “뭐가요?”

   배고프지 않니, 아나킨 넌 몇 시에 일어났니, 내가 그렇게 억지 부리지 말라고 말했을 텐데 너는 어떻게 그렇게 되도 않는 억지를 부려서 사람을 고생시키는 거냐 전날 언제 잠들었는지도 모르겠구나―따위의 더 나은 이야깃거리가 그제야 떠올랐다. 오비완은 인상을 찌푸렸다. 아나킨이 손가락 끝으로 그의 미간을 꾹 눌러 펴주었다. 다시 구겨져도 다시 펴주었다.

   “그러니까, 이번 주 말이다.”

   “네.”

   “이번 주. 이러면 생각나는 게 없니?”

   “없는데요?”

   “네 시간표가 어떻지? 이번 학기 시간표는 변동이 없을 텐데?”

   “아아,”

   아나킨의 잘 다듬어진 손톱 끝이 오비완의 주름진 미간 위로 작은 동그라미를 둥글둥글 그렸다.

   “당신이 내준 과제?”

   “당신?”

   “케노비 교수님 내주신 소설 쓰기 과제요.”

   “그것만이 아니지.”

   “다음 주 수업 때는 합평도 하죠. 네. 네.”

   “내가 항상 했던 말 기억하고 있니? 너무 장황하게 쓰지 말거라. 생각했다는 말도 자주 쓰지 말고. 모두 네 생각이란 걸 알고 있어. 분명히 네가 그 이야기를 썼으니까.”―라는 말을 할 수도 있었지만 오비완은 하지 않았다. 그는 말을 아껴야 하는 신분이었다. 다르게 말하면, 오비완은 아나킨의 전공 교수라는 신분 때문에 말을 아껴야 했다.

   슬슬 아침을 먹자는 얘기가 나왔다. 아나킨이 먼저 침대에서 일어났다. 휴대폰을 찾겠다며 떨어뜨렸던 베개를 침대 위로 돌려놓고 구겨진 시트를 정리하고 침대 옆으로 허물 같이 늘어진 옷가지를 하나 둘 씩 품에 안으며 부엌으로 나갔다. 회색 수면 바지와 목이 늘어난 흰 반팔 티셔츠, 보라색과 검은색 줄무늬에 발목이 긴 수면 양말이었다. 허물들은 부엌 한구석을 차지한 세탁기로 들어갔다. 오비완은 옷을 모두 잃은 바람에 이불을 감싼 채로 아나킨을 뒤따랐다. 둘 다 신발을 신고 있지 않았다. 오비완은 집에서 신발 신는 것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고 아나킨은 오비완의 말을 순순히 따르는 편이었다.

   “프라이팬 어딨어요?”

   수업 때와 달리, 지금은 아나킨이 질문하는 역할이었고 오비완은 답을 내놓아야 했다.

   싱크대 아래. 버터는요? 냉동실. 계란은요? 냉장고에. 식빵 있어요, 아니면 모닝롤? 둘 다 있어. 어디요? 어……. 있긴 있죠? 있다니까, 아마 냉장고? 빵을 왜 냉장고에 넣어요? 글쎄.

   오비완은 식탁 의자에 다리를 꼬고 앉아 이래라저래라 지령만 내리는 데에 맛 들일 필요가 있었다. 또한 이따금 찾아오는 일일 요리사가 무슨 요리를 하는지 소리만으로 알아맞히는 일에도 재미를 붙여야 했다. 트, 트드닥, 가스레인지에 불이 켜지고, 쇠 마찰음 후, 프라이팬이 오르고, 지이징, 하는 모터 소리와 냉장고 냉기가 함께 빠져나오고, 닫히고, 다시 빠르게 열렸다가 닫히고, 달걀이 깨지고, 치이, 탁, 타닥, 기름이 튀고……오비완은 이불이 어깨 밑으로 흘러내리는 줄도 모른 채 정신없이 졸다가 스크램블 에그와 버터 바른 토스트, 반쯤만 싱싱한 샐러드가 차려진 후에야 눈을 떴다. 아나킨이 앞치마를 맨 채 웃고 있었다.

 

   점심이 지나고, 아나킨은 점심을 먹지 않은 채 오비완의 집을 떠났다. 오후 수업이 하나 있는 날이었다. 현관에 놓인 뒤꿈치가 구겨진 운동화도 그와 함께 떠났다. 둘이 떠난 자리에는 옅은 흙 발자국만 남았다. 오비완은 현관에서 아나킨을 배웅했다.

   ‘어제 비가 왔었지.’

   오비완은 현관에 걸린 벽시계를 멀거니 올려다보았다. 시곗바늘이 꾸준히 제 일을 하고 있어서, 그도 해야 할 일을 하기로 했다. 그는 제대로 된 옷을 입기 위해 드레스 룸으로 향했다. 그를 휘감은 이불이 걸음에 맞춰 점점 아래로 흘러내렸다. 드레스 룸 전신 거울 앞에 선 후에야, 오비완은 아나킨이 집을 나서기 전 웃으며 어깨를 손가락으로 튕긴 의미를 알 수 있었다. 실없이 웃었다. 다음으로 서재로 갔다. 데스크톱 전원을 켜고 책상에 앉았다.

   작업은 여전히 진척이 없었다. 며칠에 걸쳐 어떻게든 이어온 묘사들은 시간을 드릴수록 건조해졌다. 아예 다른 생각에 빠져보아도 건져 올려지는 것은 신선하지도 식상하지도 않았다. 그저 그럴 뿐이었다. 오비완은 팔뚝을 쓸며 몸을 웅크렸다. 문득 방이 평소보다 서늘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주위를 둘러보니 열린 창이 보였다. 아나킨이 온 집안 창문을 모두 열어둔 모양이었다. 청년은 창문을 직접 열어두었다고 했다. 외출해야겠다는 생각이 불쑥 솟아서 노트북 하나만 덜렁 챙겼다. 그는 현관으로 가려다가, 뒤를 돌아보았다. 개인금고. 그는 개인금고를 열어 언제나 챙기는 리볼버를 가방에 넣은 후 서재를 빠져나갔다. 그의 구두는 아나킨이 남기고 간 희미한 발자국 옆에 바싹 붙어 있었다. 그 구두 아래에도 희미한 흙 발자국이 있었다. 어젯밤 오비완과 아나킨, 둘이 함께 한 우산을 쓰고 집으로 돌아왔으니까. 오비완은 창을 열어둔 채 외출했다.

 

 

*   *   *

 

 

   한…남자가 노트북을 들여다본다. 그는 앉아있다. 그 남자는 소설가이고 짙은 금발이다. 금발의 소설가는 턱수염을 길러 깔끔히 다듬었다. 수염은 윗입술을 살짝 가렸고 턱과 뺨을 옅게 감쌌다. 그는 잿빛 도는 푸른 눈동자를 지녔고 그 빛깔과 비슷한 약간의 우울감을 언제나 안고 있다. 지금, 소설가는 아무 말이 없다. 대화 상대가 없어서다. 상대가 있더라도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을 것이다. 그는 깊고 깊은 생각에 빠져있지만 무엇도 떠올리지 못한다. 그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가장 많이 한 일은 무엇인가를 떠올리는 것이다. 그러므로 지금은 그의 삶에서 몇 안 되는 순간이다. 그는 나무로 된 테이블을 앞에 두고 있다. 그가 앉은 의자는 철제다. 그는 그곳에서 기다리고 있다.

   그 후에, 오비완은 노트북 키보드에서 손을 뗐다.

   ‘내가 기다리고 있다고?’

   그는 턱수염을 쓸었다.

   오비완의 집 근처에는 카페가 없었다. 그는 차를 몰고 시내로 나갔다. 마땅한 곳에 차를 주차하고 걸을 수 있는 만큼 걸어 카페를 찾았다. 언젠가 한 번 가본 적 있는 곳이었다. 야외 테이블에 짐을 풀었다. 날이 선선했다. 하늘은 구름 없이 한적했고 카페도 그랬다. 점심 끝 무렵이다 보니 다들 커피 한 잔을 들고 떠났지 머무르지 않았다. 단출한 꽃장식과 함께 카페 간판 옆에 매달린 스피커에서 잔잔한 클래식이 흘러나왔다. 익숙한 선율은 방해하지 않는 선에서 그를 슬며시 감쌌다.

   근 한 달간, 그는 글을 써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다. 청탁이 들어온 것도 아니었고 누군가 새로운 작품은 언제 나오느냐고 눈치를 준 것도 아니어서, 써야만 하는 글도 없었다. 그러나 그는 써야만 하는 글을 쓰고 싶었다. 새로운 소설의 초고를 이번 달 안으로 완성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오비완은 단편소설로 몇 개의 상을 탔고 대중도 그의 이름을 들으면 몇몇 아는 척했다. 그의 마지막 작품은 이 년 전이었다. 오랜 시간은 아니었다. 누군가에게 잊히지도 않았다.

   하지만.

   여전히 그의 작업은 진척이 없었다. 그는 자신이 보고 듣는 카페의 모습을 계속 써보기로 했다. 노트북 화면을 보는 대신 시선을 비스듬히 돌려 몇 사람이 느긋이 지나는 거리를 유심히 보았다.

   바르게 닦인 도로로 차 한 대 지나지 않고, 경계가 흐릿한 인도로 몇 사람이 각자의 도착지를 향해 걷는다. 그들은 목적을 가지고 걷고 숨 쉬고 잠시 쉬었다 다시 걷는다. 바람이 불어도 그들의 옷깃만 살짝 흔들리는 게 다이며 큰 변화는 없다. 아무런 변화가 없다. 그때 금발의 소설가는 곧 발견한다. 도착지가 자신이고, 그래서 자신에게 손을 흔드는 사람을. 소설가가 알고 있는 사람이었다. (오비완은 내가 그 애를 기다리고 있었구나, 생각했다.) 이름도 정확히 알고 있다. 소설가는 담담히 생각한다. 그의 이름은 이렇고 외모는 어떻고 차림새는 또 이렇군. 곱슬기 있는 갈색 머리칼을 단정히 자르고 회색 후드와 청바지를 입고 꽤 커다란 크로스백을 멨다. 그는 소설가와 마주 앉기 위해 옆 테이블에서 철제 의자를 끌고 왔다. 둘은 전화벨이 울리기 전까지 마주 앉아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전화벨은 소설가의 재킷 주머니에서 울렸다. 그는 잠시 자리를 비웠다. 자리로 돌아왔을 때 아나킨은, (아나킨은?) 분위기가 달라져 있었다. (오비완은 그 문장을 지웠다. 모호한 표현은 언제나 경계해야 했다. 그 상황에서 금발의 소설가는 어떻게 청년의 분위기가 달라졌다는 것을 알았을까? 오비완은 다시 타이핑했다.) 분위기가 달라져 있었다……. (그렇게밖에 표현할 말이 없었다.) 청년은 아주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총은 왜 가지고 다녀요?”

   아나킨은 오비완이 없는 동안 오비완의 가방을 뒤져본 모양이었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오비완은 그다지 놀라지 않았다. 기분이 상하지도 않았다.

   “응? 호신용이야.”

   “그렇군요.”

   오비완은 턱수염을 천천히 쓰다듬었다. 그때 아나킨이 말했다.

   “야만적인 무기야.”

   “뭐라고?”

   “당신 첫 소설집 말이에요. 거기 표제작에 나오는 그 남자 기억나요?”

   오비완은 콧수염을 손가락 끝으로 쓸며 대답했다.

   “물론이지.”

   “그 사람이 한 말이잖아요. 그래서 저는…….”

   “그래서?”

   “당신이 총을 끔찍이 싫어하는 줄 알았어요.”

   오비완은 웃음을 터뜨렸다.

   “하하, 그건 소설일 뿐이잖니, 아나킨. 내가 그 소설을 썼다고 주인공이 나인 건 아니잖아? 그건 너도 잘 알 텐데.”

   “그렇죠. 하지만, 그 소설도 당신 꿈 이야기 아니에요?”

   “약간의 모티브만. 하지만 어쨌든 말이야,”

   오비완은 고개를 비스듬히 까딱였다.

   “그건 소설이잖니.”

   “그렇죠…….”

   “그런데 왜 그런 생각을 한 거냐?”

   “모르겠어요. 당신은 그럴 줄 알았어요……. 왤까요?”

   왤까요?라는 질문은 두 가지 뜻을 지닌 것 같았다. 하나는, ‘저는 왜 당신이 총을 싫어할 거라고 확신했을까요?’였고, 다른 하나는 여전히, ‘당신이 어째서 총을 가지고 다니는 거예요?’였다. 두 번째로 떠올린 질문은, 엄밀히 따지자면 이상한 생각이었다. 아나킨은 두 번째 뜻으로 왤까요?라고 말한 것이 결코 아닐 것이었다.

   “왤까요?”

   아나킨이 한 번 더 물었다.

   그냥…호신용 리볼버인데, 라고 오비완은 생각했다. 앞뒤가 맞지 않게 떠오른 대답이었다. 그 총은 오비완이 대학 시절 정당한 경로를 통해 손에 넣은 것이었다. 특별한 사연도 없이 어느 날 필요할 것 같다고 생각해서, 오비완은 그 리볼버를 샀다. 그것이 다였다.

   아나킨은 두 손을 모아 허벅지 사이로 끼워 넣은 묘한 자세로 철제의자에 앉아있었다. 눈은 오비완의 시선과 맞닿아있었는데 그럼에도 금발의 소설가는 자신의 제자가 다른 생각에 빠진 것만 같았다. 터무니없는 생각이었다. 그 후에 아나킨과 평소처럼 여러 가지 주제로 얘기했던 것 같다. 거리로 천천히 차오르는 어둠에 익숙해져서, 어느 때가 되자, ‘어? 시간이 벌써 이렇게 됐어?’라며 깜짝 놀라게 될 때까지.

   ‘그랬던가?’

   이 문장을 마지막으로, 오비완은 글쓰기를 멈춰야 했다. 어느새 노트북 배터리가 5퍼센트밖에 남지 않아서였다. 반쯤 어두워진 화면으로 정리되지 못한 문장들이 어떻게든 꼬리에 꼬리를 물고 있었다. 그는 노트북이 꺼지기 전에 얼른 파일을 저장했다.

   그때 마침 메일 도착 알람이 화면 아래로 비죽 튀어나왔다. 그는 얼음이 녹아 밍밍해진 아메리카노를 한 모금 쭉 들이켰다. 다음 주 수업 때 합평을 해야 하는 세 학생 중 두 명의 이메일이 앞다투어 도착해 있었다. 오비완은 집으로 돌아가 학생들이 이메일로 보내온 소설을 읽기로 했다. 다음 수업을 위해 학생들의 작품을 꼼꼼히 읽고 나름의 평가를 기록해두기 위해서였다. 걸을 수 있을 만큼 걸어 자신의 차를 발견하면 그는 그 차를 몰고 집으로 돌아갈 것이다. 그가 집으로 돌아가는 동안, 그에게 도착해야 할 세 번째 메일이 도착하리라.

 

   그러나 일요일 저녁까지 세 번째 메일은 도착하지 않았다.

   일요일까지 오비완은 참 바빴다. 쓰기 시작한 소설을 손보기 위해 아침 일찍 눈을 떴고 종일 책상에 앉아 식사를 거르다가 새벽이 시작될 때쯤 씻고 잠이 들었다. 그런 나날이 며칠 반복되고 토요일까지 사라져버린 후에 홀로 일요일을 맞게 되었다.

   사실, 그는 이번 주 내내 소설을 쓰지 못했다. 수없이 타이핑하고 지우고 다시 작성한 여러 문장은 단시간에 단편소설 두 편 분량을 훌쩍 뛰어넘었으나, 소설이라 하기엔 솔직했고 나쁘게 말해 노골적이었다. 이야기는 오비완과 아나킨의 대화를 오려내고 짜깁기해 이어 붙인 장면 장면의 연속이었다. 그러다 어느 순간부터 대화한 적 없던 대화가 새로이 이어져 이야기 속의 둘은 난생처음 나누는 대화를 나누게 되었다. 때때로 오비완은 아나킨과 자신이 이런 대화를 나눈 적이 실제로 있었다고 착각하기도 했다.

   예를 들어, 아나킨은 오비완에게 이렇게 말했다.

   “제가 실망을 안겨드렸어요.”

   이 말부터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아나킨은 단 한 번도 오비완에게 실망을 안긴 적이 없었다.

   “___의 가르침을 가볍게 여기고 교만했던 점 사과드립니다. ___ 때문에 낙담했었어요.”

   몇 가지 부분은 기억이 흐려 빈칸으로 둬야 했는데 그 이유조차 불확실했다. 대화를 잊은 것인지, 상상력이 부족한 것인지.

   이 대화에서 오비완은 강하고 현명한 그를 굳게 믿는다며 부드럽게 대답했다. 입술은 호선을 그리고 눈가에 옅은 주름이 지며 눈동자는 청년을 바라보았다. 너는 나를 단 한 번도 실망하게 한 적이 없단다…….

   “난 너를 진심으로 믿고 사랑하고 있단다.”

   하지만 오비완은 그 말을 입 밖으로 꺼내지 않았다.

   그의 작업은 엉뚱한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걱정하지 않았다. 이것은 써야 하는 글이 맞았다. 다만 그 누구에게도 보여주어서는 안 될 글이며 소설이 아닌 글일 뿐이었다.

   그는 오히려 아무런 연락이 없는 아나킨이 걱정되었다. 이미 학기 초에 오비완은 과제 제출에 대한 공지를 철저히 못 박았다. 점수를 받을 수 있는 최대 커트라인은 일요일, 바로 오늘이었다. 오비완은 아나킨에게 마감 공지를 다시 알려야 할까 고민했다. 그를 편애하고 있는 것을 누구에게도 들키고 싶지 않아서 결국 연락하지 않을 테지만, 오비완은 일요일 밤이 늦도록 고민했다.

   아나킨은 점심을 먹지 않은 채 오비완의 집을 떠난 후로 돌아오지 않았다. 언제나 하루에 한 번씩은 ‘당신 집에 들러도 돼요?’라고 묻곤 했는데. 그렇다고 아예 연락이 없던 것은 아니었다. 청년은 하루에 한 번씩 꼭 문자를 보내왔다. 사소한 이야기였다.

   오늘은 무엇을 먹었나요.

   저는 샌드위치를 먹어요.

   어…

   그리고 당신을 사랑해요.

   답장하지 않은 것은 오비완이었다. 특별한 이유는 없었다. 지켜야 할 선이라고 생각했다. 제자와 연애를 하고 있다는 사실은 죄책감을 부채처럼 불어나게 해서.

   일요일 자정이 되기 겨우 몇 분 전에, 아나킨에게서 메일이 도착했다. 오비완이 막 잠자리에 들려고 할 때였다. 메일을 보낸 사람이 다른 학생이었다면 다음부터는 좀 더 일찍 과제를 제출하길 바란다며 꾸중하는 답장을 보냈을 테지만, 이번엔 보내지 않았다. 아나킨에게 낙제점을 주지 않을 수 있게 되어 마음이 놓였다. 파일만 다운 받아두고 내일 아침 일찍 읽어야겠다고, 그는 생각했다. 파일의 용량을 보니 단편 소설로써 적당한 분량이었다.

   ‘분명 지금까지 아나킨이 보여줬던 짜임새 좋고 끝까지 읽게 만드는 묘한 글이겠지.’

   그는 잠이 들었다. 잠자리에 들어서, 다음 날 아침까지 절대 깨어나지 않았다.

 

 

*   *   *

 

 

   체크인하던 오비완은 문득 기시감을 느꼈다. 그는 고개를 들어 호텔의 높은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웅장한 크리스털 샹들리에가 로비를 밝히는 모든 빛을 품으며 화려하게 빛났다. 그 희고 반짝이는 빛깔을 중심으로 오묘한 패턴을 지닌 대리석이 이 공간을 만들어냈다. 또한 섬세하게 조각된 벽과 기둥이 아름다움을 과시하기도 했다. 그는 모든 광경을 눈에 담으며 천천히 시선을 옮겼다. 체크인을 도와주던 호텔 매니저가 그를 기다렸다. 이 호텔은 오비완이 크고 작은 행사에 참여하기 위해 여러 번 숙박한 적 있는 곳이었다. 기시감이라고 할 것 없이, 익숙한 장소였다. 그는 호텔 방으로 올라갔다. 엘리베이터를 잘못 타는 바람에 남은 4층을 계단으로 뛰어 올라가는, 바보 같은 실수는 저지르지 않았다. 여유롭게 도착한 호텔 방 문을 열자, 그는 익숙해 마지않는 곳에 도착했다. 단번에 알았다. 일주일 전 직접 예약했고, 방금 체크인했으며, 거의 유일하게 잊고 지냈던 지난 밤 꿈의 장소였으니까.

   오비완은 벽에 줄지어 걸린 작은 액자들을 하나하나 주시하고 놓아주며 긴 복도를 걸었다. 그는 매스꺼움을 느꼈다. 한 가지 생각이 끈질기게 머릿속을 떠나지 않아서였다.

   ‘그가 나타날까?’

   터무니없는 생각이라며 스스로 타박했다. 오비완은 그를 만나지 못한 지 1년이 넘었다.

   오비완은 자신에게 질문했다.

   ‘일 년이 넘는 흐른 후에 갑자기 잃었던 기억을 되찾을 수 있을까? 게다가 그 기억이 예지몽처럼 앞으로 일어날 일들을 예견한다면?’

   복도에 담소를 나누는 무리가 많았다. 하나 같이 단정한 정장에 똑 떨어지는 보타이를 맸고, 또렷한 눈동자로 서로를 바라보며 쾌활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행사에 참석하기 위해 일찌감치 체크인한 이들이었다. 오비완은 복도를 걸으며 삐뚤어졌을까 염려되는 보타이를 만지작거렸다. 아무도 오비완을 발견하지 못한 듯 저들만의 대화에 깊이 빠져있었다.

   ‘꿈에선 이렇게 싸늘한 분위기는 아니었는데.’

   오비완은 짧게 웃었다.

   “뭐라고요? 그 사람이요?”

   누군가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하지만 복도를 지나는 사람이라면 누구든 그 대화를 엿들을 수 있었다. 그렇다던데요? 그런데…, 그때 누군가 쉿, 하고 눈치를 줬다. 오비완은 행사장으로 향하던 걸음을 멈추고 그들에게 고개 숙여 인사했다. 그들은 오비완과 똑같은 표정으로 그의 정중한 인사를 받고 자리를 떠났다. 홀로 남겨진 오비완은 다시 복도를 걸었다. 그는 언젠가 대학에서 쫓겨난 사람이긴 했지만 이 행사에 정식으로 초대받은 사람이기도 했다.

    샹들리에에서 발하는 찬란한 빛이 거대한 방 전체로 흩날렸다. 세련된 장식물로 엄숙한 분위기가 만들어진 행사장이었다. 그러나 아무 소용 없었다. 엄숙한 분위기는 곧 시작될 파티로 산산조각나게 될 운명이었다.

   행사는 허울뿐이었다. 그들은 정말 ‘파티’를 열고 싶었는데 마땅한 핑곗거리가 없던 모양이었다. 오비완은 그럼 그렇지, 라고 생각했다.

   지난 1년간 문단으로부터 외면받은 오비완이 새로운 책을 발표했다. 단편소설만 고집하던 그가 400여 페이지나 되는 장편소설을 두 권이나 들고나온 것은 그 사실만으로 놀라웠다. 작품성 또한 문단은 물론 대중들에게 어필할 만큼 훌륭했기에 금발의 소설가는 등단 후 가장 큰 주목을 받았다. 곧 그는 출판사로부터 후속작 이야기와 함께 팬들과의 시간을 가지는 게 어떻겠냐는 제안을 받았다. 남들의 수군거림과 달리, 오비완은 제안을 너무나 쉽게 받아들였다. 그는 30대로 아직 젊었고 불미스러운 일로 교수직에서 쫓겨났다 해서 숨어 지낼 사람이 아니었다.

   행사에 초청된 작가 중에서 평판이 괜찮은 사람을 찾는 일은 어려웠다. 폭력 사건에 휘말려 뉴스의 한 장면을 장식한 알코올 중독자도 초청자 자리에 앉아있었다. 행사는 순식간에 끝나버렸다. 누군가 의견을 내놓아도 관심은 쉽게 식었고 다른 이야기를 끌어오려다가도 흐지부지되었다. 질문하려는 사람도 없었다. 오비완은 대중 앞에 앉아 아무 불만도 표하지 않았고 이 말도 안 되는 행사가 끝나길 가만히 기다렸다. 그때 웨이터가 샴페인 잔을 서빙 하기 시작하더니 행사의 주최자가 잔을 높이 들어 올리며 파티의 시작을 알렸다. 예정돼있던 시간보다 두 시간은 이른 때였다.

   거대한 방을 파티장다워지도록 치장하기 위해 웨이터와 행사 관계자들이 분주하게 돌아다니는 동안 수많은 사람이 몰려들었다. 오비완은 처음 보는 사람 수십 명 발견하기도 했는데, 그 사람들은 오비완의 팬으로 보이지 않았다. 대부분의 사람이 부족한 공간 때문에 서로를 붙잡고 파티장 밖으로 떠밀리지 않기 위해 힘썼다. 어느새 홀 중앙으로 작은 악단이 만들어졌고 잔잔한 연주가 시작되었다. 오비완은 웨이터에게서 샴페인 한 잔을 건네받아 빈 테이블에 자리를 잡았다. 아주 작은 원형 테이블이었고 자리도 높아 앉기 불편했다. 그렇기 때문인지, 그 누구도 오비완의 앞에 앉지 않았다. 방 안이 서서히 어두워졌다. 그 누구도 눈치채지 못할 만큼 천천히. 그리고 완연한 어둠이 내린 후에야 사람들은 대화와 알코올 나누기를 멈추고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오비완은 눈을 감았다. 그는 빛이 돌아오기를 기다렸다.

   ‘어쩌면 그가 기다리고 있지 않을까?’

   오비완은 생각했다.

   악단의 첫 연주가 끝나자, 오비완 케노비가 눈을 떴다. 원색 불빛이 바닥에서 높은 천장까지 온 방 안을 채우며 넘실거렸다. 그는 앉은 자리를 벗어나지 않기 위해 무던히 애썼다. 무릎이 움찔거리며 쑤셨고, 주먹 쥔 손에 손톱자국이 났다. 입술이 파르르 떨렸다. 추위 때문은 결코 아니었다.

   “아나킨.” 오비완은 그렇게 말했다.

   파티장은 한껏 물이 올라 사람들에게서 새어 나오는 열기로 가득했다. 온 방 안을 울리는 음악 소리는 더욱 웅장해졌지만 동시에 약간 천박해지기도 했다. 군중 모두 파티를 즐겼다. 과장된 즐거움 너머로 누군가 오비완을 바라보고 있었다. 짙은 색 정장을 입고 보타이는커녕 단추를 두어 개 풀어버린 모습이었다. 붉은빛이 아래에서부터 그를 비췄다. 다음으로 짙은 자줏빛이, 이어서 보랏빛, 푸른빛이, 그를 물들이고 사라졌다. 다시 어둠이었다가, 그의 뒤편에서 순백색 빛이 시작되었다. 오비완은 그런 것을 처음 보았다.

   “오비완.”이라고, 오비완은 청년이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를 똑똑히 보았다. 닫혀있던 입술이 움직여 오비완을 불렀다.

   청년이 머무는 곳은, 특별할 것이 없었다. 잘 차려진 바(Bar)는 건너편에 있었고 화려한 악단은 가까이 있지도 않았다. 대화를 나눌 만한 지적 수준을 가진 무리가 있는 것도 아니었고 매력적인 사람도 없었다. 색다른 장식으로 꾸며지지도 않았고 눈에 띄게 아름다운 빛이 피어나지도 않았다. 그럼에도, 아나킨은 그 벽에 기대 서 있었다. 가만히. 아무런 동요 없이. 청년의 앞으로 서로 몸을 바싹 붙인 채 춤을 추는 사람들이 흘러 다녔다. 강요되는 열기 속에서, 오비완과 아나킨은 서로를 마주했다.

   오비완은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고 있었다. 그는 아주 오래전, 아나킨이 본래 속내를 감추고 있던 시절, 어떤 꿈을 꾸었다. 그 꿈은 현실이 되어, 오비완의 눈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왜 그 금고에 리볼버를 넣고 온 거지?’

   오비완은 뒤늦게 후회했다.

   그동안, 아나킨은 사라졌고 남은 것은 파티장 벽을 기어오르는 온갖 색채의 불빛이었다. 오비완이 아나킨을 뒤쫓아야겠다고 마음먹는 데엔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러나 한번 결심을 다진 그는 망설임 없이 재빨랐다. 악단의 음악에 맞춰 떠들고 마시는 군중 사이를 횡단하는 일은 만만치 않았다. 만약 그곳에서 누군가 오비완을 발견하게 된다면, 그는 테두리가 흐릿한 모습일 것이다. 파티장을 찍은 사진이 있다면 초점이 맞춰지지 않아 배경으로만 존재하는 흐릿한 오비완을 발견할 수 있으리라. 그러나 이 파티의 주인공임에도, 아이러니하게 그를 발견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오비완은 작은 액자가 줄지어 걸린 호텔 복도를 빠르게 거슬러 자신의 방으로 향했다. 걸음을 떼면 뗄수록 파티장을 빠져나간 아나킨이 호텔 방에서 기다리고 있으리란 확신이 가열되었다. 그 생각은 단번에 붉게 번졌는데 마치 용암 같았다. 머릿속에 가득 차올라 용암 같은 열기를 뿜어댔다. 검은 화산이 거듭 폭발해 거대하고 깊은 용암 강을 이루는 이미지가 번뜩였다. 화산은 수십 개로, 쉴 틈 없이 터지고 부서지며 모든 인체 기관에 경고를 보냈다.

   ‘청년이, 옛 스승을 기다리다 지쳐 이미 떠나버렸다면?’

   그는 또다시 엘리베이터를 잘못 타는 실수를 저질렀다.

 

   자신의 호텔 방으로 돌아온 오비완은 급히 보타이를 풀었다. 무슨 이야기를 꺼내야 할지 생각하는 것 자체가 그를 옥죄였다.

   “새 책 내신 것 축하드려요, 교수님.”

   옛 스승을 기다리고 있던 청년이 활짝 웃으며 말문을 열었다.

   “제가 이미 아는 내용이라서 책은 안 샀어요. 제가 안 샀어도 많이 팔렸으니 괜찮죠?”

   “아나킨.”

   오비완은 아나킨의 이름을 쉬지 않고 몇 번 더 중얼거렸다. 아나킨, 아나킨, 아나킨……. 목소리는 청년에게 닿을 수 없을 만큼 작았다.

   “혹시 제게 줄 책 준비하셨을까요?”

   “준비해야 했는데, 내 생각이 짧았구나.”

   예정되어 있던 대로, 창은 활짝 열려있었다. 아나킨은 아무것도 아닌 벽에 기대 있던 것처럼 아무것도 아닌 창틀에 걸터앉아있었다. 커튼이 바람에 흩날리며 그를 숨겨주었다가 다시 내보였다. 오비완은 아나킨의 손아귀에 갇힌 리볼버를 발견했다.

   “총이라니…야만적인 무기구나, 아나킨.”

   연극무대에 서기 위해 오랫동안 연습한 대사를 읊듯, 오비완이 말했다. 그는 현관 옆 스위치를 눌러 방에 불을 켰다. 아나킨은 인상을 찌푸리며 오비완을 노려보았다. 잠시 눈이 마주쳤지만 옛 스승이 먼저 눈길을 피했다. 오비완 케노비는 지금, 이 순간에만 할 수 있는 말을 골라야 했다. 아나킨이 입을 열기 전, 모든 것을 온전히 끝내버리고 싶었다.

   “요즘도 내 악담을 하고 다니니?”

   “네?”

   아나킨은 깜짝 놀란 목소리였다.

   “저는 그런 적이 없는걸요?”

   오비완은 버럭 소리쳤다.

   “네 덕분에 내 교수 인생은 끝났어! 알고 있는 거냐?”

   입술이 파르르 떨렸다. 변덕은 순식간에 일어났다. 청년은 표정을 풀고 미소 지었다.

   “그게 왜 제 잘못이에요?”

   억지로 만들어낸 표정이 아니라는 사실은 방에 불을 밝힌 오비완이 가장 잘 알았다.

   “저는 누가 물어보면 사실만 말했던 것뿐이에요. 그렇잖아요?”

   아나킨은 확인 사살하듯 말을 이었다.

   “당신이 제자와 연애 한 건 사실이잖아요? 섹스하고 밥도 먹고 같이 한 우산도 쓰고? 음, 우리 와인이라도 마실까요?”

   청년은 이미 이 방의 주인이었다.

   “저기 공짜 와인이 있던데.”

   “나도 봤어. 하지만 그다지 마시고 싶지 않구나.”

   오비완은 꼬박꼬박 대답했다. 그러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요?”

   “그래.”

   “흠, 정말 좋은 와인이던데. 아쉽네요.”

   “그렇구나.”

   “파티는 끝났나요?”

   “아직 끝나지 않았어.”

   “그런데 왜 벌써 오셨어요?”

   “네가 파티장을 나가는 걸 봤다.”

   “제가 보고 싶으셨어요?”

   오비완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아나킨이 말을 계속했다.

   “파티를 참 오래도 하네요.”

   오비완은 한숨을 쉬며 대답했다.

   “…그래.”

   “새 책 발표를 참 좋은 곳에서 해요.”

   “그렇지……. 하지만 이곳 사람들은 파티에 미쳐있어. 너도 보지 않았니? 새 책 발표? 그게 다 무슨 소용인지.”

   아나킨은 진심으로 즐겁게 웃었다. 머나먼 곳에서부터 불어온 찬바람은 1년 사이 어깨까지 긴 그의 갈색 머리칼을 아름답게 흩날리게 했다. 오비완은 그 모습에서 눈을 뗄 수 없었다. 끔찍하군, 이라고 생각했고, 어쩌면 그렇게 중얼거렸다.

   “그런가요? 그런데 책은 무슨 내용이에요? 책 내용을 알아야 후속작 읽는 재미가 있을 텐데. 알려줘요.”

   “이미 알고 있다고 하지 않았니.”

   “당신한테 직접 듣고 싶은걸요.”

   “……제자에게 배신당한 슬픈 스승의 이야기지.”

   “슬픈 스승이요? 그럼 스승은 제자에게 배신당해서 슬퍼진 게 아니라 이미 슬펐다는 건가요?”

   “네가 알아서 생각하거라. 그건 독자의 몫이지.”

   “재밌네요. 그게 다인가요?”

   “그게 다야.”

   아나킨은 리볼버를 만지작거렸다. 실린더가 열리고 탄환이 빠져나오고 다시 빨려 들어가 실린더에 맞춰졌다. 오비완은 참지 못하고 아나킨에게로 손을 뻗었다. 아나킨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총을 이리 내놓거라.”

   “싫어요, 오비완.”

   “네가 이러는 이유를 도저히 모르겠어.”

   오비완은 또박또박 말하며 창가로 다가갔다.

   “난 네가, 그런 소문을 퍼뜨린 이유를 모르겠구나. 네가 우리의 비밀을 떠벌리고 다니다니, 정말 우습지 않니?”

   “전혀요?”

   “내 말을! …끊지 마.”

   아나킨은 눈을 동그랗게 뜨며 항복했다는 듯 양손을 들었다. 한 손엔 리볼버를 든 채 다른 한 손으론 입을 따라 지퍼 잠그는 시늉하기를 잊지 않았다.

   “우리는 그때 아주 평화로웠어. 나는, 나는 너를 만나서 행운이라고 생각했을 정도야. 너도 날 사랑한다고 하지 않았니? 넌 분명 나한테 그렇게 말했지. 사랑한다고.”

   “물론 지금도 사랑해요, 오비완.”

   “우린 헤어졌어. 끝났다고.”

   “누가 그래요? 대학에서? 주위 사람들이?”

   오비완은 팔뚝을 계속해서 쓸어내리며 추위를 겨우 견뎠다.

   “당신 꿈에 그렇게 나왔나요?”

   빙긋 웃는 청년 앞에서, 오비완이 할 수 있는 일은 적었다. 오비완 케노비는, 찬란해야 할 LA의 야경을 단순한 배경으로 전락시켜버린, 아름다운 청년 아나킨 스카이워커에게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오비완 케노비는 이번 생에 태어나 이렇게 아름다운 존재를 처음 보았다. 오비완은 여전히 자신의 제자를 순수하게 증오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고, 그 깨달음은 그에게 결단을 내려야 할 시간이 다가왔다고 신호를 보냈다. 앞으로 일어날 일은 오래전부터 정해져 있었다. 아나킨은 곧 사라지게 될 것이다. 어디로, 어떤 방법으로 사라질지는 알 수 없었지만, 그 방법이 무엇이든지 간에. 오비완은 정해진 미래를 멈춰야 할지 내버려 두어야 할지 고뇌했다. 그는 겨우 말했다.

   “난…네가 1년간 뭘 했는지 어디 있었는지 아무것도 몰라.”

   “괜찮아요. 제가 다 알려드릴게요.”

   “왜? 왜 이제 와서 그러는 거냐?”

   오비완은 간절하게 물었다. 진실을 안다 한들 바뀌는 게 없다는 것이 곧 진실임을 알면서도, 그는 간절히 물었다.

   “당신이 우리에 대한 소설을 썼잖아요.”

   그 대목에서 오비완은, 끓어오르고 흘러넘치고 뒤섞이고 다시 폭발해버리는 수많은 화산과 용암의 이미지를 떠올렸다. 그것들은 몇 번이고 번뜩이며 자신들의 존재를 증명했다. 이상한 일이었다. 바람은 끝없이 냉랭하기만 했으므로. 곧 오비완은 차분해졌다. 추위에 떨던 몸도 조금씩 잦아들었다. 그는 입을 떼기 전, 마지막으로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아나킨, 네가 원하는 게 뭔지 알 것 같구나.”

   금발의 소설가는 그렇게 말을 시작했다. 아나킨이 기대하던 답이 나오길, 두 사람 모두 진심으로 바랐다.

   “관심.”

   “네?”

   “내 관심을 바라는구나.”

   그리고 오비완이 바라던 일이 일어났다. 창밖으로 먹구름이 몰려오는 것보다 덜 극적인 방법으로, 아나킨이 창가에서 일어나 오비완에게 다가온 것이다. 청년은 느리게 걷지 않았다. 그렇다고 빠른 걸음도 아니었다. 오비완은 자리에 얼어붙었다. 소설가는 ‘오비완이 바라던 일이 일어났다’는 부분을 지우고 새로 고쳐 쓰고 싶었다. 그렇다면 좀 더 나은 표현으로 글을 쓸 수 있을 것 같았다. 아예 다른 내용으로 채울 수도 있을 텐데…….

   아나킨은 언제나 해왔다는 듯 오비완의 뺨을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아나킨.”

   “그걸 지금 아셨어요?”

   청년은 홀연 사라지지 않았다. 바람은 여전히 쌀쌀맞았다. 누군가의 이가 서로 부딪혀 딱, 딱딱, 소리를 냈다.

   “지난 생의…복수라도 남은 것이냐.”

   오비완은 자신이 쓴 책의 주인공이 마지막으로 뱉은 대사를 읊었다.

   “맞아요, 오비완.”

   방 안은 밝았지만 어둠에 잡아먹힌 듯 고요했다. 차라리 이곳이 어둠에 휩싸였다면 고요가 친구처럼 익숙하게 느껴졌을 텐데, 라는 생각이 누군가의 머릿속에 떠올랐다. 하지만 괜찮았다. 아름다운 청년이 사랑에 마지않는 옛 스승에게 키스할 테니까. 그들은 오래도록 입을 맞출 것이다. 어느새 밤이 아주 깊었다. 아주 깊어진 밤이었다. ■

 푸 링   @umchuch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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